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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다. 현황 이 비석들은 1949년 도민의 이름으로 세워졌다. 공적비라 새겨진 온전한 비석 은 높이 1.4m, 너비 60cm, 폭 30cm 규모로 꽤 큰 편이다. 깨진 비석 1기는 높이 60cm, 너비 60cm, 폭 30cm 정도 남아 있다. 현재 이 비석 2기는 산지로 27-1번지의 주택 인근 계단에 방치돼 있다. 이곳은 최근에 번지가 건입동에서 일도1동으로 변경됐고, 기상청을 확장하면서 기상청 으로 올라가던 계단도 차단된 상태라 접근이 어렵다. 3) 역사현장 ① 서북청년회 본부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일도1동 1385-3번지 일대 나. 개요 서북청년회(이하 서청)는 한반도 서북지역 출신의 월남한 청년들로 구성된 극 우 청년단체였다. 이들은 해방 후 소련군이 북조선에 진주하면서 항일세력을 앞 세워 토지개혁, 친일파 응징, 종교억압에 나서자 월남한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이 들은 공산주의에 대해 극도의 피해의식과 복수심을 가지고 있었다. 서청은 1946 년 11월 30일 서울에서 선우기성(鮮于基聖)을 단장으로 창립됐다. 서청은 ‘조국 의 자주독립 쟁취, 균등사회 건설, 세계평화에 공헌’을 강령으로 했으나 실질적으 로는 좌익세력 제압을 위한 우익세력의 선봉 역할을 했다. 서청은 결성 후 1947 년 서울에서 3·1절 기념식 후 벌어진 좌우익의 남대문 충돌사건을 비롯하여 부산 극장사건,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 사무실 점령사건, 정수복 검사 암살사건 등 좌 익 활동에 물리적인 테러와 방해를 일삼았다. 처음 서북청년회로 창립했던 서청 은 1947년 4월 지청천(池靑天)이 이끄는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에 합류했다. 그 러나 당시 통합 반대파들은 문봉제(文鳳濟)를 위원장으로 서북청년회를 재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