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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2025년 4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4월의 독립운동 의정원)과 회 의 운영 방침 (의장 및 서기 선출, 선거 방식, 서기의 발언권 등) 등을 정한 후, 정 부 수립을 위한 구체적 논의를 이어갔다. 국호는 ‘대 한민국’으로 정해졌으며, 임시정부 국무총리는 이승 만으로 선출되었다. 이외에 내무총장 안창호 등 각 부의 총장과 차장을 선출하고, 나아가 임시헌장을 제정 공포하였다. 12시간의 회의를 통해 임시의정원 및 임시정부 구성을 마친 이들은 차기 회의 안건으 로 ‘임시의정원법 제정’을 합의하였다.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을 당 시 국내외 각지에서 8개의 임시정부가 출현하였다. 그 가운데 실제적인 조직과 기반을 갖춘 것은 상하 이 임시정부, 국내의 한성(漢城)정부, 연해주의 대한 국민의회 등 세 곳의 임시정부였다. 세 곳의 임시정 부는 하나의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통합을 추진했 다. 각자 지역적 기반을 달리하고 있던 세 곳의 임시 정부 통합은 여러 차례에 걸친 논의 끝에 1919년 9 월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통합되었다. 임시정부는 ‘적 절한 절차와 공인을 통해 임시정부가 구성’되었으 며, “윌슨 대통령이 말한 민주주의와 자주정부의 원 칙을 수용”하고, 한국 민족의 지속적인 자유와 독립 을 선언한다고 미국 측에 알렸다(『The New York Times』, 1919.9.1). 임시정부의 체체 변화와 부서별 활동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행정부인 임시정부와 입법 부인 임시의정원으로 구성되었다. 1919년 4월 임 시정부의 지도체제는 국무총리제였으나, 통합 과정 에서 임시헌법이 개정되어 대통령중심제로 변하였 다. 대통령 중심의 지도체제는 1925년 4월 제2차 헌 법 개정을 통해 국무령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임시 정부의 지도력이 약화됨에 따라 다시 지도체제를 집 단체제로 변경하였다. 그 결과 1927년 임시정부는 국무위원들이 공동으로 역할하는 국무위원제를 정 하는 한편, 민족유일당운동의 대의를 수용한 ‘이당 치국(以黨治國: 당으로써 나라를 통치한다)’을 헌법 1919년 10월 경의 상하이 하비로 대한 민국임시정부 청사(경기도박물관 제공) 1921년 상하이에 도착한 이승만 대통령 환영식. 가운데가 이승만, 왼쪽이 이동휘 · 이시 영 · 이동녕 · 손정도, 오른쪽이 안창호 · 박은식 · 신규식 등이다(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