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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 조천면 6. 와흘리 와흘리는 논흘이라고도 불리는 중산간 마을로 4·3 시기 1구와 2구로 이루어졌 다. 1구와 2구는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었고, 1구는 해안마을과 가까우며 본동과 상동이 있었다. 2구에는 고평동(궷드르)과 수기동(물터진골)이 있었다. 와흘리는 비교적 농토와 임야가 넓고 농축업이 번성했던 마을이다. 와흘리가 처음으로 토벌대의 공격을 받은 것은 1948년 11월 11일이었다. 이 날, 무장대가 조천지서를 공격하고 물러나자 함덕에 주둔했던 토벌대가 이들을 추격했다. 토벌대는 와흘1구까지 올라왔다가 마을을 불태우고 돌아갔다. 와흘 2 구의 비극은 11월 13일 아침에 시작됐다. 이날 새벽 교래리를 방화하고 주민을 학살한 토벌대는 가까운 와흘2구를 덮쳤다. 당시는 전도적인 소개작전이 시작되 기 전이어서 고평동과 수기동에는 주민들이 평상시대로 살고 있었고, 많은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그 후 토벌대의 무차별 토벌을 피해 와흘 주민들은 인근의 와흘굴 같은 자연동 굴과 새미오름, 바농오름의 곶자왈에서 한겨울을 보내야 했다. 신촌리나 조천리 로 소개갔던 주민들에게도 시련은 이어졌다. 토벌대의 계획된 자복사건에 말려들 어 함덕국민학교에 집결했다 아라동 박성내에서 40여 명이 총살당하기도 했다. (제주읍-아라리-학살터-박성내, 참조) 소개 간 해안 마을에서 성담을 쌓고 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