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page

553 조천면 된 날이며 여기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지 6주년 기념일이니 당시 희생된 영혼 을 위해 묵념을 올리자”는 한 주민의 제안에 따라 묵념을 하게 됐다. 그때 설움에 북받친 주민들이 대성통곡을 한 것이 경찰에 알려져 곤욕을 치른 것이었다. 5 그 후유증은 컸다. 제주경찰서는 ‘4·3 당시 형살자를 추모했다’는 죄로 신승빈 이장과 주민들을 조사하여 반성문을 쓰게 했다. 주민들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 후 애무하게 죽어간 주민들의 혼을 달래려고 술 한 잔 올리고 통곡한 것이 죄가 되어 신승빈은 이장직을 내려놓게 됐다. 다. 현황 당시 북촌국민학교는 단층 기와집이었다. 마을 소각 후 국민학교 건물은 해체 됐다. 목재들은 나중 한청사무실로 이용되는 함덕리 한청단장 한재원의 창고를 짓는데 사용됐다. 현재 학교 부지는 별 차이가 없으나 건물의 형태는 현대식으로 탈바꿈했다. 북촌주민들은 2013년에 운동장 서쪽 끝에 북촌대학살이 이곳에서 일어났음을 5)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413~415쪽. 북촌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