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7page

549 조천면 람들은 함덕리로 소개되어 갔으나 또 거기에서 수십 명이 희생되었다. 이보다 앞 서 음력 11월 16일에는 무장대의 습격에 대비하여 밤낮으로 보초서던 민보단원 23명이 마을 동녘 낸시빌레에서 집단학살되었다. 군경의 탄압을 피하여 가까운 야산 숲속과 동굴에 숨어있던 상당수의 주민들은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기도하고 귀순하면 살려준다는 전단을 보고 손들고 나왔다 가 잔혹한 고문으로 죄가 씌워져 정뜨르 비행장에서 집단 처형당하거나 바다에 던져져 수장되고 혹은 육지형무소로 보내어져 행방불명되었다. 원통한 죽음들이었건만 울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말문에 족쇄를 채워진지 어언 60년이 흘렸다. 민주화운동의 성공으로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대가 종식됨 에 따라 4·3진상규명 요구의 함성이 드높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2000년 1월 12 일. 4·3특별법이 제정되고,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를 대표하 여 공권력의 잘못을 사과함으로써 마침내 4·3사건의 진실이 역사의 조명을 받게 되었다. 1993년, 마을 원로회에서는 4·3진실이 규명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피해조사를 단행, 439명의 희생자와 재산피해상황을 조사하였고, 유족회에서는 수년 전부터 매년 음력 12월 19일에 합동위령제를 봉해해 오고 있다. 이에 우리는 모든 이의 뜻을 모아 이곳 너븐숭이에 위령비를 세우고 제단을 마 련함으로써 억울하게 가신 영령들을 위무하고 이 자리를 평화시대의 산 교육장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