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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4) 희생자 집단묘지 <너븐숭이 애기무덤> 가. 소재지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1179-1번지 일대 나. 개요 1949년 1월 17일 함덕 주둔 2연대 3대대 군인들에게 북촌국민학교 운동장에 집결한 북촌주민들은 4~50여 명 단위로 끌려나갔다. 먼저 학교 동쪽 당팟쪽에서 총소리가 났다. 그리고 서쪽 너븐숭이 쪽으로 끌려온 주민들은 양개왓, 옴팡밧 등 지에서 집단총살됐다. 당시 여러 학살터에는 마치 무를 뽑아 널어놓은 것 같이 시 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어른들의 시신은 임시 가매장했다가 사태가 진정된 후 안장됐 다. 그러나 어린이와 무연고자들 일부는 당시 가매장한 상태로 지금까지 너븐숭 이 소공원에 남아 있다. 그날 학살터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고 김석보(2003년 68세, 전 북촌리4·3유 족회장)는, “어머니와 내가 그날 저녁 함덕으로 가기 전에 세 동생의 시신을 너븐 숭이에서 발견했죠. 어머니가 뒷날 이곳에 와서 동생들의 시신을 너븐숭이 구석 에 임시 매장했어요. 동생들은 지금도 그때 묻힌 그 자리에 남아 있죠” 하며 울먹 였다. 당시 김석보의 동생 김순자(11, 여)와 김영보(9, 남), 김대보(6, 남)는 운동 장에 어머니와 함께 끌려나갔었다. 공포 속에 이리 저리 옮겨다니던 동생들은 어 머니를 놓치고 따로 앉게 됐고, 군인들에게 너븐숭이 쪽으로 끌려가 총살됐다. 어 머니와 12살이었던 김석보만 살아남았다. 김석보는 어머니가 생전에 했던 것처 럼 음력 1948년 12월 18일에 동생들의 제사를 지냈다. 북촌 주민들이 밭일을 하다가 돌아올 때 쉬어가던 넓은 팡이 있어서 너븐숭이 라 불리는 이곳에는 현재 애기무덤 19기가 올망졸망 모여 있다. 이곳에는 양영길 시인의 ‘애기 돌무덤 앞에서’ 제목의 시비가 세워져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