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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 제주4·3유적 Ⅱ_ 서귀포시편 벌대를 피해 몸을 숨겼던 고영태(24, 남)와 고완보(22, 남), 김대진(28, 남), 김성 탁(33, 남), 이성규(24, 남) 5명이 발각돼 총살됐다. 토벌대는 이에 그치지 않고 총 살소식을 듣고 사촌 김성탁의 집을 방문했던 김성추(37, 남)와 이성규의 모친 송 기화(40, 여) 역시 총살했다. 이후 무릉리에서 일어난 확인된 사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48년 6월 1일: 송군평((37, 남)은 토벌대가 마을을 급습하자 도주하던 중 붙잡 혀 총살됨 6월 미상일: 송여후(68, 남)는 경찰과 내통한다며 무장대에 납치된 뒤 살해됨 10월 25일: 홍성찬(22, 남)은 10월 23일 인향동에서 토벌대에 연행된 뒤 오오무라(大村) 병사에서 심문을 받고 총살됨 11월 11일: 송응민(19, 남)은 군인들이 마을에 진입하자 피신하던 중 붙잡 혀 총살됨 1948년 11월 중순 이후 전도적인 초토화 작전이 실시되면서 무릉2구에서는 먼 저 인향동이 11월 말께 소개되었다. 그 후 인향동은 토벌대에 의해 전소됐다. 2 차 소개는 12월 8일, 평지동과 좌기동이 대상이었는데 토벌대는 이 두 마을 집들 은 방화하지 않았다. 아마 이 두 마을은 인향동만큼 한수기곶과 가깝지 않아 소각 에서 제외됐던 것으로 보인다. 무릉2구가 소개된 이후에도 피해는 계속됐다. 그 후 발생한 주요사건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948년 12월 13일: 김대홍(32, 남)과 송군옥(48, 남), 조대인(42, 여), 현태봉(38, 남) 4명은 무릉지서로 연행됐다 황씨 좌전에서 총살됨 (아래 학 살터-황씨 좌전, 참조). 1949년 1월 16일: 박희옥(32, 남)과 조카 박경은(21, 남), 홍기룡(29, 남) 등 3명 이 군트럭에 태워져 끌려간 뒤 행방불명됨 1950년 8월 20일(음력 7월 7일): 예비검속됐던 고순택(22, 남)과 김두일(37, 남), 송영봉(23, 남) 3명이 섯알오름 탄약고터에서 학살됨 (상·하모리–학살터– 섯알오름 탄약고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