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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 대정면 5. 무릉리 무릉리는 4·3 시기 1구와 2구로 나뉘어져 있었다. 1구는 300여 가호의 주민들 이 사장밧과 서장동, 2구는 200여 가호가 좌기동과 평지동, 인향동으로 나뉘어져 살았다. 1구와 2구의 거리는 약 3㎞ 정도 됐고, 2구인 좌기동과 평지동, 인향동도 서로 1㎞ 정도씩 떨어져 있었다. 무릉2구는 일찍부터 토벌대의 지목을 받았다. 중산간 마을로 무장대가 자주 길 목으로 이용했고, 대정면과 한경면 주민들이 은신처로 이용했던 한수기곶이 마을 과 인접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로 인해 무릉리는 4·3 초기인 5 월부터 토벌대와 무장대 양쪽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 5월에 고완진(21, 남)이 밭 일을 하다 경찰에 연행돼 가던 중 총살됐고, 김원찬(26, 남)은 무장대에 납치된 뒤 행방불명됐다. 강태형(19, 남)은 불안감을 느끼고 피신한 뒤 행방불명됐다. 5월 13일에는 강명숙(31, 남)이 친척집에 가던 중 무장대에 납치된 뒤 살해됐다. 학생 이었던 김창보(16, 남)가 하굣길에 무릉2구 곶밭에서 나무열매를 따먹다 경찰에 게 총살되기도 했다. 무릉리에서 가장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날 역시 1948년 5월이었다. 5월 25일 무릉2구였던 좌기동은 토벌대에 의해 주민 8명이 총살됐다. 이날, 소에게 풀을 먹 이고 마을로 돌아오던 김성진(42, 남)이 토벌대에게 먼저 총살됐다. 다음으로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