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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③ 옴팡밧 가. 소재지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나. 개요 1949년 1월 17일 희생자 중 학살터를 ‘너븐숭이’, ‘옴팡밧’, ‘탯질’로 신고한 사 람들을 묶어 옴팡밧 희생자로 정리했다. 이곳에서는 이날 70여 명의 주민이 군토벌대에 총살됐다. 처음, 사람들은 설마 우리까지 다 죽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다. 3차로 이곳 옴팡밧 지역에 끌려왔던 사람들은 학살 진행 중 지프차를 타고 온 한 장교에 의해 학살이 중지돼 일부 주민들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현재 북촌리4·3유족회장인 고완순 (1940년생, 여)이 그중 한 사람이다. “난 총살 직전이었어. 넋 놓고 앉아 있는데 장교가 달려와 중지를 시키는 거야. 그때 그 장교가 무슨 말을 썼는지? 표준말인 지, 이북말인지는 기억이 안 나.” 현재 너븐숭이에서 학살됐다고 신고한 사람은 강학룡(69, 남) 등 72명이다. 정부는 북촌대학살을 추념하기 위해 2008년 너븐숭이 일대 부지를 매입하고 ‘4·3 너븐숭이 위령공원’과 ‘4·3기념관’을 건립했다. 이곳 옴팡밧에는 순이삼촌 문 학비와 당시 학살돼 널브러진 희생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들이 설치됐다. 1. 옴팡밧의 안내판 “‘옴팡밧’은 ‘오목하게 쏙 들어가 있는 밭’이라는 뜻이다. 4·3사건 당시 최대의 인명피해로 기록되고 있는 1949년 1월 17일 북촌대학살 현장의 한 곳이다. 당시 이 일대에는 ‘마치 무를 뽑아 널어놓은 것 같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 다. 이 밭의 가운데 있는 작은 봉분도 당시 희생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