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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미국감리교회의 맥클레이 목사가 잠시 입국하여 국왕으로부터 교육과 의료사업의 윤허를 받았으며 미국장로교회의 알렌 의사는 갑신정변 때의 공을 세움으로써 선교의 길을 열었다. 이보다 8년 전부터는 만주에서 이성하 이응찬 백흥준 김진기 서상륜 등이 잇따라 세례를 받고 성경번역에 동참하여 새로 나온 복음서를 가지고 국내에 숨어들어 전도를 개시한 결과 1884년에는 의주와 소래에 평신도교회가 서게 되었다. 한편 일본에 가 있던 이수정이 1883년 세례를 받고 성경번역을 시작함과 아울러 조국선교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미국교회는 아펜젤라 목사와 언더우드 목사를 초대선교사로 파송하게 되었다. 그들은 일본에 들렀다가 이수정의 한글성경을 가슴속에 품고 1885년 4월 5일 부활절날 이 부두에 상륙하였다. 그들은 먼저 부활절날 여기에 도착하였음을 하나님께 고하고 사망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을 온갖 얼매임에서 풀어주실 것과 그들에게 빛과 자유를 주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실것을 간절히 기도하였다. 마침내 인천과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방에 교회가 서기 시작하였다. 이때 한국교회는 민족교육과 의료봉사와 미신타파를 우선사업으로 책정 시행하였으며 순 한글로 성경을 펴냄으로써 온 백성이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게하는 동시에 새로운 겨레문화 창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나라가 주권을 빼앗길 무렵에는 성신강림의 은사를 받아 구령구국운동에 나서 망국의 한을 달래 주었으며 강제로 한일합병이 된 이후에는 일제의 무단정치가 강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1독립운동을 주도하여 겨레의 받침대 구실을 다하였다. 그뒤 공산주의 반기독교세력과 퇴폐주의 사상의 와중에서 교회연합운동 신앙진흥운동 물산장려운동 절제운동 주일학교운동 청년운동 농어촌사업등 선교사업을 다양화 하였으며 일제 말기에는 우리말과 글의 수호운동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항거와 순교로써 겨레와 교회의 양심 구실을 다하였다. 8.15해방 이후에는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새나라 건설운동 6.25전란 이후에는 전쟁고아와 피난민 구호사업 휴전후에는 전국복음화운동 새로운 선교방법으로서의 기독교방송과 군목경목제도의 창설 신학의 토착화 교회사의 정립 남녀평신도운동 청소년운동 사회참여와 민주화추진에도 기여하였다. 이때부터 한국교회는 더욱 교세를 국내외에 과시하여 종래의 받는 교회에서 벗어나 명실공히 주는 교회로 성장 발전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국토분단의 철벽을 허물어뜨리지 못한채 공산치하에서 신음하는 북한동포들을 위하여 안타까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이 탑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