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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제주읍 정부에서 인정한 일도리 4·3희생자는 36명(남자 30명, 여자 6명)이다. 1) 민간인 수용소 <일도리 공회당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일도1동 1108번지 나. 개요 1948년 11월 중순 이후 군경토벌대는 중산간 지역에서 초토화작전을 벌였다. 그 후, 일부 주민들은 토벌대의 지시대로 해안마을로 소개하기도 했으나 거처를 잃은 많은 주민들이 임시방편으로 인근 야산에 숨어들었다. 그해 겨울을 눈구덩 이에 은신하며 겨우 살아남은 주민들은 다음 해 봄, 귀순공작에 따라 하나 둘 내 려왔다. 당시 이들 중 상당수는 주정공장 같은 대규모 창고건물에 수용돼 취조를 받았다. 일도리 공회당도 이런 수용소 중 한 곳이다. 증언에 따르면, 이곳에 수용 됐던 주민들 중 노약자나 어린이들은 몇 달 만에 석방되기도 하였으나 청년층 대 부분은 혹독한 고문을 받고 타지방 형무소로 이송돼 한국전쟁 직후 집단학살됐다 한다. 당시 일도리 공회당은 운주당 터에 있었다. 운주당은 조선 명종(明宗) 21년 (1566년) 제주목의 동성(東城) 안 가장 높은 언덕에 창건됐던 정자로 후에 불에 타 없어졌다. 이곳에는 일제시기 정광사란 사찰이 있었다가 해방 후 칠성통(현재 일도1동 1298-13번지)으로 이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절은 1947년 2월 결성 된 제주도민전 초대 의장 중 한 사람인 이일선 스님이 주지로 있었다. 그는 민전 과 함께 3·1절 기념투쟁 제주도위원회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전쟁 직후 예비검속됐다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