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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 조천면 찰의 지휘를 받아가며 3년여 기간 성을 쌓고 지키는 과정이 계속됐다. 이때는 하 루 종일 일해도 돌아오는 것은 밀가루 한 되뿐인 극도로 피폐한 삶의 연속이었다. 다. 현황 북촌리에서는 3차에 걸쳐 축성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당시 마을의 밭담, 산담은 물론 바닷가의 돌까지 모두 옮겨가며 성을 쌓았다. 그러다 경비가 해제되자 성담 에 쓰였던 돌들은 대부분 원상태로 돌아갔다. 현재 남아 있는 성담은 3차성의 흔 적으로 두 곳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북촌초등학교 북쪽 울타리로 길이 20m 정 도 남아 있다. 다른 하나는 1267번지 밭에 길이 25m, 높이 4m, 아랫폭 2m, 윗 폭 0.5m 정도가 겹담으로 남아 있다. 이곳은 북촌 노인회관 남쪽으로 30m 길을 따라 가다보면 우측에 보이는 주택 뒷밭에 해당된다. 2) 은신처 <마당궤> 가. 소재지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659번지 일대 나. 개요 북촌주민 강서수 집 뒤뜰에 있는 궤이다. 1948년 6월 22일, 강서수 형제 등 9 명의 북촌주민들이 이 궤에 숨었다가 제주경찰감찰청 1구서 경찰들에 체포됐다. 이날 체포에는 당시 미군 4명이 사복을 입고 참여했다. 이날 1구서 소속 경찰과 미군이 합동으로 북촌마을을 수색하게 된 까닭은 며칠 전인 6월 16일에 일어난 북촌포구 경찰 피습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이 사건으로 양태수 경감 등 2명의 경 찰이 희생됐다. 사건 후 군경이 매일 들락거리며 젊은이들을 무차별 검거했고, 북 촌 청년들은 마을을 떠나 타지로 피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이날(6월 22일), 마당궤에 숨어있던 북촌청년 9명 중 7명은 출동한 경찰의 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