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page

526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한림면 여기저기에 출동해 주민들을 무차별 연행하고, 학살했다. 1948년 11월 중순 이후 중산간 마을이 초토화되자 신평리 등지에서 주민들이 소개를 내려와 개별적인 친분에 따라 마을 여기저기 흩어져 살았다. 한국전쟁 직 후에는 월남한 평양 출신자들 70~80명이 마을에 들어오기도 했다. 마을에서는 이들을 향사에 일부 수용하고, 다른 일부는 함바를 크게 지어 살게 했다. 정부는 이들에 대해 식량 등 물자를 지원해줬는데 이들은 마을에서 몇 개월 지내다 모두 돌아갔다. 일과리에서 4·3으로 처음 희생된 사람은 강병국(24, 남)이었다. 그는 마을 서기 로 일하며 보초를 서다 1948년 5월 20일, 무장대에게 피살됐다. 그 후 마을 주민 들이 학살된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6월 15일: 무장대는 마을을 기습해 문철민(24, 남)이 경찰에 협조한다며 그의 어린 두 자녀와 함께 학살함 6월 27일: 정삼길(25, 남)은 1947년 10월 3일 제주지방법원에서 벌금 2 천원을 선고 받음. 그는 1948년 들어 다시 토벌대에 연행된 후 고문 받고 풀려났으나 그 후유증으로 사망함 7월 2일: 김병길(51, 남, 이명 김무길)은 마을 구장으로 5·10선거에는 선 거위원으로 일함. 그는 이날 서림수원지를 탈영해 산으로 가던 군인들에게 자택에서 총살당함 10월 26일: 문공삼(23, 남)은 전날 토벌대에 연행된 후 오오무라(大村) 병 사에서 조사를 받음. 당시 다른 주민들은 석방됐으나 그는 무장 대원 송공삼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이날 총살됨 (금악리 - 1948년 10월 26일, 모슬봉 탄약고 터 학살사건으로 주민 10 명 학살됨, 참조) 11월 24일: 양군부(21, 남, 대정중학생)는 밭일을 하고 귀가하다 자택 앞 마을길에서 토벌대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함 12월 9일: 문경수(32, 남)와 문오생(43, 남), 문동하(29, 남)는 군인들에게 서림 빌레못으로 끌려가 총살됨. 당시 동일리 변원종(20, 남)도 함께 학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