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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1947년 8월 13일: 장윤수 등 주민 3명이 경찰 발포로 부상당함 1948년 4월 13일: 이명찬(31, 남)이 경찰에 연행된 뒤 신흥리 부끄랭이동산에서 총살됨 4월 21일: 김형득(35, 남)과 이성도(26, 남)가 아라리에서 다른 여러 명과 함께 총살됨 12월 16일: 고경직(34, 남) 등 22명이 동복리 난시빌레에서 군토벌대에 학 살됨 12월 21일: 아라리 박성내에서 조천면 관내 청년 100여 명이 집단총살됨. 이날 북촌리에서는 김진필(25, 남)과 이만식(34, 남)이 끌려가 학살됨 12월 26일: 이현환(20, 여)이 도피자수용소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함 덕리 서우봉 생이봉오지에서 총살됨 (함덕리-학살터-서우봉 몬주기알, 참조) 12월 29일: 한석희(21, 여)가 함덕리 서우봉 인근에서 다른 두 명의 여성과 함께 함덕지서 경찰에 잔인하게 살해됨3 1949년 1월 17일: 2연대 3대대 군인들이 북촌대학살사건을 일으켜 주민 300여 명을 학살함 (북촌리-학살터-당팟·양개왓·옴팡밧, 참조) 1월 18일: 3대대 군인들이 함덕대대본부로 온 북촌주민 100여 명을 학살 함. 이날 강도화(57, 여) 등 도피자 가족 30명도 함덕리 골연못 에서 학살됨 (함덕리–학살터–골연못, 참조) 북촌리에서는 무장대에 의한 학살사건도 1건 발생했다. 3) 당시 16세였던 고 홍순식은 이 사건에 대해, “(자수하면 살려준다고 해서 자수했던) 나는 군대로 넘 겨져 취조를 받았습니다. 내가 어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9연대와 2연대의 교체기인 때문인지 군대 에서는 날 풀어줬습니다. 함덕에 머물면서 매일 신상보고를 하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경찰에게 넘 겨진 부녀자 4명은 희생됐습니다. 토벌대는 미치광이들이었습니다. 여자들은 총살당한 게 아닙니 다. 옷이 모두 벗겨진 채 국부를 칼로 난도질당하는 참혹한 모습으로 숨졌습니다“라고 증언했다. (『4·3은 말한다』 제4권, 북촌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