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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 조천면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러나 굶주린 애기는 엄마 가 죽은 줄도 모르고 엄마의 옷고름 속을 파고 들며 젖을 힘차게 빨아댔다. 너븐숭이 4·3기념 관에 걸린 강요배 화백의 그림 ‘젖먹이’는 그런 당시를 그린 그림이다. 곧이어 군·경 가족을 제외한 나머지 주민들은 4~50명 단위로 학교 주변 여기저기로 끌려가 차례로 학살됐다. 젊은 남자만 죽은 게 아니었 다. 어린이나 노인, 여성도 많았다. 총성이 멎은 건 여러 시간이 지나 날이 어두워질 무렵이었 다. 군토벌대는 일단 학살극을 멈추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다음날 대대본부가 있는 함덕리로 오라고 명령하고 떠났다. 이날 하루에만 북촌주 민 300여 명이 학살됐다. 살아남은 주민들 중 일부는 군토벌대의 지시에 따라 이 튿날 함덕으로 갔다. 이날도 함덕에선 북촌주민 100여 명이 학살됐다. 북촌리에 서는 해마다 음력 12월 18일이 되면 온 동네가 제사를 지내느라 북적인다. 명절 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한 세대의 남자가 거의 사라진 북촌리는 한때 무남촌(無男 村)이라 불리기도 했다. 북촌리는 제주도 160여 개 자연마을 중 인명피해가 노형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마을이다. 2 특히 북촌리는 1949년 1월 17~18일 단 이틀 동안 400여 명의 주 민이 학살돼 그 아픔이 더욱 크다. 정부는 2008년, 북촌리에 너븐숭이 4·3공원을 건립해 이러한 북촌대학살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며 평화와 인권의 의미를 전 파하고 있다. 현재 너븐숭이 4·3공원에는 전시관과 위령공원, 애기무덤, 순이삼 촌 문학공원이 마련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맞고 있다. 다음은 북촌리의 주요 사건이다. 강요배 화백의 그림 ‘젖먹이’ 2) 2019년 12월 기준, 정부가 인정한 4·3희생자 14,442명 중 희생자가 가장 많은 마을 세 곳은 노형 리 538명, 북촌리 446명, 가시리 421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