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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원호(1913년생, 남)가 증언했다. “1948년 12월입니다. 함덕지서에서 주민들을 동원해 한길가의 가시덤불을 정리하는 작업이 있다고 해서 저도 나갔고, 이상영 도 나갔지요. 작업이 끝난 후 북촌국민학교로 모이라고 하더니, 다음날 함덕으로 민보단원들은 오라고 해요. 다음날 저는 아파서 나가지 못했어요. 그날, 함덕으로 간 사람들은 마을에 돌아오지 못했죠. 3~4일 정도 함덕에 있었다고 해요. 그러다 12월 16일 토벌대가 이들을 차에 태우고는 동복리 방향으로 가면서 2명을 내려 주고, 나머지 주민들은 북촌리와 동복리 사이 난시빌레에서 모두 총살했어요. 그 때 이상영(42, 후유장애로 1957년 사망)만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살아돌아왔어 요.” 윤공순이 덧붙였다. “그날, 1948년 12월 16일엔 하루 종일 눈비만 내렸어 요.” (구좌면-동복리-학살터-난시빌레, 참조) 그리고 한 달 후인 1949년 1월 17일, 북촌리에서는 대규모 민간인학살이 함덕 에 주둔했던 2연대 3대대 서청부대에 의해 자행됐다. 이날 하루에만 북촌국민학 교 운동장에 집결했던 마을 주민 300여 명이 불가항력적으로 대학살됐고, (북촌 리-학살터-당팟·양개왓·옴팡밧, 참조) 다음날에는 함덕 대대본부로 갔던 주민 100여 명이 학살됐다. 1 1949년 1월 17일, 함덕리 주둔 3대대 일부 병력이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북촌 마을에서 무장대의 기습을 받아 군인 2명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북촌대학 살의 직접적인 도화선이었다. 이 사건 후 함덕 군토벌대는 북촌리에 들어와 집집 마다 돌며 “연설 들으러 학교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다. 군인들은 주민들 이 운동장에 모이자 마을을 불 질렀다. 순식간에 400여 채의 가옥들이 잿더미로 변했다. 군토벌대는 운동장에 모인 주민들 중 군·경 가족들을 한쪽에 정렬시킨 후 나머 지 사람들을 다른 쪽으로 몰아세웠다. 그리고는 먼저 민보단 책임자를 불러내 “마 을 보초를 잘못 섰다”며, 현장에서 즉결 총살했다. 주민들이 동요하며 군경 가족 이 모인 쪽으로 달려들자 여러 발의 총성이 이어졌다. 이때 운동장 안에서 몇 사 람이 희생됐다. 그중에는 젖먹이를 안은 젊은 엄마도 있었다. 엄마가 피를 흘리며 1) 이날 함덕 도피자 가족 수용소에 갇혀있던 30여 명의 북촌주민들도 함덕리 평사동에서 학살됐다. (함덕리-학살터-골연못,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