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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 제주4·3유적 Ⅱ_ 서귀포시편 니다. 이제 피묻은 역사를 사랑으로 닦고 용서로 감싸 안아 우리의 가슴속에 따뜻 하게 묻으려 합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는 후세의 역사가들이 밝힐 일이나 너나없 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모슬포에 수많은 희생자들의 넋을 이곳에 모아 김가동산 양지바른 곳에 빗돌을 세워 옷깃을 여미고 명복을 비나니 이제는 모두 잊고 편히 눈감아 고히 고히 잠드소서. <전면> ③ 牧師 趙南洙 面長 金南元 功德碑 <후면> 金面長任은 一九0四年 九月 九日 大靜邑 下摹里 九七七番地에서 出生하여 一九 四八年 四·三事件 當時 下摹里長과 民保団長으로 在職하는 동안 四·三 特攻隊事件 으로 面長任의 次男 熺種君을 討伐隊에 依해 희생된 四·三의 아픈 体驗을 하셨으 며 當時 大靜地域 住民들의 生命을 趙南洙 牧師와 함께 救命을 하셨다. 그때 山사 람들에게 食糧과 衣類를 빼앗긴 住民들은 山사람을 協助했다는 嫌疑로 죽음이 임 박했을 때 趙牧師와 自首하도록 주야로 東奔西走 努力하여 이들을 救命하여 온 마 을을 平和롭게 하였음으로 오늘에 귀감이 되시는 분이시다. 面長任은 一九二五年 濟州農林學校를 卒業하고 一九二七年부터 十一年間 敎職生活을 하였으며 一九五 二年 四月 初代 大靜面議員과 同年 五月부터 一九五三年 二月까지 大靜面長을 歷任 하신 분이시다. 趙牧師任은 一九一四年 六月 二十四日 生으로 一九四0년 서울朝鮮神學校를 卒 業하여 一九四四年 五月 牧師로 任職한 以來로부터 五十年 동안 하나님의 牧者로 써 牧會에 專念하였다. 一九四七年 摹瑟浦 敎會 始務로 摹瑟浦地域과 恩緣을 맺게 되였으며 濟州現代史의 비극인 四·三事件을 이곳에서 겪었다. 山사람들의 만행과 討伐隊의 과잉진압으로 움추려들었던 摹瑟浦 住民들은 代殺事件과 特攻隊事件으 로 더욱 萎縮되였다. 特히 山사람들의 강압에 못 이겨 졸쌉되박이나 옷가지를 주 었던 住民들은 그 名單이 警察에 발각되였다는 消息과 함께 죽을 날 만을 기다리 고 있었다. 一九四八年 十二月 二十五日 趙牧師任는 이들을 살리기 爲해 文亨淳 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