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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 제주4·3유적 Ⅱ_ 서귀포시편 해 닥치는대로 虐殺劇이 벌어졌다. 이 過中에 左翼인 洞里總責이 警察에 붙잡히며 押收된 名單에 記載된 사람들은 죽음을 免치 못하게 되었다. 이때 民報團長인 金 南元 里長과 摹瑟浦敎會 趙南洙 牧師 두 분이 마을주민 모두를 鄕舍에 集結토록하 여 여러분들이 살길은 오직 自首밖에 없다는 內容의 演說로 住民 百余名의 이에 同調하여 摹瑟浦警察署에 自首하여 가니 文署長은 이 시간 後로는 山사람들과 一 體 接觸을 禁하고 우리 警察에게 잘 協助하면 너희들을 봐주겠다고 말하고는 民報 團長에게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各 自調書를 作成하여 오도록 指示하여 住民들 을 鄕舍에서 大部分 좋게 作成된 調書를 提出하여 自首者 全員의 목숨을 살려줬다. 文署長은 六·二五 때 城山浦警察署長으로 勤務하면서도 戒嚴令하에서도 海兵隊 情 報參謀 海軍 金斗燦 中領의 名義로 된 豫備 <우측면> 檢束 中 CD級 拘束者를 銃殺執行하여 陸軍本部 情報局 濟州CIC 隊長에게 報告 토록 한 公文을 받고도 不當하다고 하여 住民 二二一名 程度를 全員 釋放하기도 했 었다. 이처럼 生命을 아껴주시는 분이 六·二五 때도 摹瑟浦에서 勤務를 하셨다면 百祖一孫의 悲劇은 없었을 것이다. 文署長任은 홀로 單身越南하여 末年에 他鄕客 地 濟州땅에서 無主孤魂이 되었으니 愛國志士의 終末을 슬프게 생각하며 恩德으 로 生命을 구하여 살아온 大靜邑 老人會長 高春彦翁은 평생 報恩을 갚고자 巨額의 自費를 提供하여 推進委員들과 함께 이 善政官의 公德이 後世에 永遠한 龜鑑이 되 도록 이 碑를 세우는 바이다. 吳萬錫 謹書 <좌측면> 高春彦 大靜邑 下摹里 功德碑建立推進委員長 大韓老人會道聯合會副會長 李百年 大靜邑 下摹里 基督敎摹瑟浦敎會長老 下摹3里敬老堂初代會長 許寬洙 大靜邑 上摹里 大星産業株式會社社長 摹瑟浦老人會顧問 吳柄憲 大靜邑 下摹里 大靜鄕校典校 下摹里初代民選里長 姜弼奉 大靜邑 上摹里 大靜鄕校典校 大靜國校學區單位老人會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