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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협회의 발자취 511 제5절 부산광역시회 1. 개요 1971년 초, 부산지역의 전기주임기술자들은 모임이 있을 때 마다 국내 제2의 도시에 지부를 설립하여야 한다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나, 지부운영에 필 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이 원만하지 않아 많은 망 설임이 있었다. 그러나 지부를 우선 출범시키고 나서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방법을 찾아보아도 늦지 않고 만약 심각한 국면에 접하게 되면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출연하여 해결하자는 의견이 점차 우세해 지고 있었다. 1971년 10월 18일 오후 2시 부산상공회의소 강당에 서 사단법인 대한전기주임기술자협회 영남지부 창립총 회를 개최하고, 이상태 지부장 등 지부임원을 선출하였 다. 1971년 11월 17일 본부 이사회에서는 최초로 설립 되는 영남지부 승인신청에 대하여 심의하면서 부산・경 남지부로 명칭을 변경하여 승인할 것을 의결하였다. 지부 이사회는 본부에서 70%, 지부에서 30% 사용 하는 회비수입만으로 지부를 운영할 수 없다고 판단 하여 전기기술세미나와 전기주임기술자 자격검정시험 ( “ 전검 ” 으로 약칭) 대비 특별강좌를 개설하는 등의 자체 재정 마련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발전에 발전을 거듭 하는 가운데 1973년 5월 4일 지부소속으로 울산분회 가 창립되었고, 같은 해 6월 10일에는 마산분회가 창 립되면서 조직의 세분화도 이룩하였다. 이후, 1978년 12월 21일 마산분회가 경남지부로 승 격하였고, 1992년 1월 1일에는 본부 이사회의 의결로 울산분회가 경남동지부로 승격함으로써 두 개의 지부 를 분가시킨 모체지부가 되었다. 이상태 초대, 2대 지 부장은 재임 4년 동안 지부의 기초를 튼튼하게 다졌 으나, 한일수 3대 지부장은 1년의 짧은 재임으로 아쉬 움을 남겼다. 정금용 4대, 5대 지부장은 연임으로 6년 간 재임하면서 지부의 번영을 이룩하였으나 협회 조직 이 뿌리 째 흔들리는 어려움을 당하면서 울분을 삭여 야 했다. 전기사업용과 자가용 전기공작물을 주임기술자의 감 독 하에 자체 시공할 수 없다는 법무부 유권해석 이후 「 전기공사업법 」 개정에 따른 여론조사, 서명운동, 탄원서 제출 등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협회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하여 종신회비 납 부운동을 전개했을 때, 부산지부가 전국에서 가장 많 은 실적을 올렸고 회원의 결속을 강화하는 등 지부의 번영을 이룩하기도 하였으나 어느 시점에 이르러 종신 회원이 많은 부산지부가 회비수입의 부진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유선부 6대, 7대, 8대 지부장은 1982년부터 9년간 재임하면서 지부발전에 나름대로 노력하였으나 경리 행정 착오로 본부 감사를 여러 번 받았으며, 심지어는 본부에서 일방적으로 이용학 씨를 부산지부장에 임명 하여, 2명의 지부장이 재임하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류강수 9대 지부장은 협회가 대한전기협회에서 분 리하여 재 창립된 후 1991년 지부총회에서 추대되었 본문2편 _ 6(1) 475543(ok).indd 511 2014-01-24 오후 7:3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