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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시 토벌대에 붙잡힌 주민들은 조금만 혐의가 있어도 함덕 대대본부를 거쳐야 했 다. 이곳에 한 번 불려간 주민들은 대부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조천, 함덕은 물 론 선흘, 대흘의 조천면 산간지역 주민들과 제주시 삼양, 화북주민들, 그리고 구 좌면 주민들이 주로 그 대상이었다. 조천면 관내 젊은이들이 자수권유에 따라 자수하러 간 곳도 이곳 함덕국민학교 였다. 그러나 이들은 1948년 12월 21일 박성내로 끌려가 총살됐다. (제주읍-아 라리-학살터-박성내, 참조) 1949년 봄, 귀순공작이 펼쳐지면서 중산간 지역에 숨 어살던 주민들이 대거 귀순해 온 곳도 대대본부가 자리한 이곳이었다. 이 즈음 대 대본부로 끌려간 주민들은 거의 모두 고문을 받다 해수욕장 인근의 골연못, 관뒛 모살, 진동산 같은 모래판에서 죽어나갔다. 형식적인 재판조차도 없는 즉결처분 이었다. 당시 함덕국민학교는 남쪽 일주도로변에 정문이 있었다. 정문을 들어서면 교사 본관은 북쪽 바닷가에 남쪽을 향해 있었고, 이곳 본관에서 연행자 취조 같은 대부 분의 업무가 이루어졌다. 본관 뒤편으로 화장실과 숙직실이 있었는데 여기는 수 용소 역할을 했다. 김병석(2003년 74세, 남)은, 1949년 1월 17일 북촌대학살 당 시 군경가족으로 분류된 주민들이 이곳 수용소에 수용됐었다고 했다. 그리고 정 함덕국민학교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