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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영월엄씨대종회보 40호 간척사업이 한창이던 2,000년대 후반 울릉도 의 면적을 추월하였고 울릉도뿐만 아니라 완도 까지 추월하였다. 이후 지속적인 추가 간척으로 안면도보다도 넓은 125km 2 의 넓이로 확장되 었다. 2) 대상지의 역사 원래 이름은 제비가 많은 섬이라 하여「자연 도(紫燕島)」라고 불렸다. 고려 시기에는 무신정 권의 실력자 중 한 명이었던 두경승이 이 곳으 로 유배되어 병사했고, 오늘날까지 그의 무덤이 영종도에 남아 있다. 1875년 이전까진 남양도호부(현 화성시 서 부) 관할이었고, 이후 인천도호부 관할로 옮겨 갔다가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부천군으로 이관되었다(부천군 영종면, 용유면). 일제 말기 인천의 성장으로 부천군 본토와 떨어졌고, 이에 1973년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옹진군에 편입되 었다가 1989년 인천광역시 중구로 옮겨갔다. 조선시대에는 해안 요새인 영종진(永宗鎭)이 설치되었다. 의외로 선사시대 유적지가 있다. 무인도일 것 같은 이 섬에 일찍이 사람이 정착해 살았음을 보여준다. 운요호 사건 한참 이전의 조선 중기 유적도 있다. 물론 앞서 설명했듯이 수군이 해안 요새를 둘 정도로 국방상 요충지였으니 당연하다. 서울 앞 바다에 뜬 섬이라 그럴 수밖에 없다. 사실상 1950∼60년대에 영종도에 살던 사람의 절반 이상은 한국 전쟁 때 남하해서 고향으로 돌아가 려다 못 가고 북한에서 가까운 이 섬에 머무르 게 되었다고 하니, 토착민들 보다 이주민의 유 입이 많은 편이었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간척사업을 통해 용유도와 연결되었다. 이후에 통합된 섬은 영종 도 또는 영종 용유도라고 한다. 3) 대상지에 입주한 경위 우연히 영종에 왔다가 인천대교 앞에 근접된 위치에 끌리어 방문하였고 이미 분양 되었으나 재계약이 가능한 현재 거주하는 대상지를 분양 받게 되었다. 당초에는 팔미도와 인천대교가 바 로 보이고, 향후에도 전망 좋아 주말 이용 목적 이었으나 불편함이 없어 거주하게 되었다. 2018년도 추석 즈음에 이주하여 어려움 없이 살고 있으며 근래 풍수지리학을 접하며 배움을 바탕으로 거주지를 다소 긍정적인 측면으로 적 용하였다. 3.지리오결(地理五訣)의 적용 용혈사수(괟穴砂水)에 향법(向法)을 강조하 여 오결(五訣)을 만들었다. 물의 흐름에 따라 용 혈사수향 이기법(굊氣法)을 설명 하고자 한다. 1) 용(괟) 본 대상지는 태조산인 희말리아 산맥으로 이 어져 온 백두대간을 통하여 전승 되며 속리산에 서 발원하여 한남정맥으로 이어지며 만월산에 서 수봉산, 자유공원, 월미도에서 영종도 백운산 으로 이어오며 백운산 정상에서부터 산맥(山 脈)의 흐름이 마치 용과 같이 변화무쌍하게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