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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2025년 4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안동 출생과 사회운동의 배경 1897년 11월 경북 안동군 풍서면 가곡리 (佳谷里)에서 권술조(權述朝)의 아들로 태어 났다. 아호는 오서(五敍)이며, 권일(權一)·권 부덕(權富德)·권형신(權亨信) 등 이명을 사용 하였다. 서당 훈장인 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우다가 10세 무렵인 1907년 남명학교에 다녔으며 1912년 동화(東華)학교를 졸업하였다. 어려 운 가정 형편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 다가, 재주를 아깝게 여긴 최준(崔埈)의 후원 으로 1916년 대구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 다. 1년여 만에 서울로 올라가 중앙학교와 경 성부기학교에 교적을 두었으나, 경제문제로 학교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 1918년 10월 광주에서 전라남도 도청의 고용원으로 근무 핵심공적 3·1운동 당시 광주 만세시 위를 주도했으며, 조선공 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중 앙집행위원으로 1926년 6·10만세운동을 준비했다 ■ 건국훈장 독립장 권오설(權五卨) 선생 조선공산당 이끌며 6 · 10만세운동 준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 전남도청 직원으로 광주에서 3 · 1운동 참가 “6 · 10만세운동에서 권오설은 책임자의 역할을 맡았 다. 운동 추진과정이나 모든 계획이 그에 의해서 이 뤄지고 있었다. 그가 작성한 「격고문」의 사상적 성 향은 1920년대 초 극단의 계급지상주의를 극복하고 있었으며, 민족적 관점과 계급적 관점이 민족혁명을 위해 결합된 이념과 노선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 국가보훈부, ‘2021년 6월의 독립운동가’ 내용에서 글 편집부 주요약력 ● 1897년 11월 25일 경북 안동 출생 ● 1919년 3월 광주에서 3·1운동 참여, 피체 징역 6개월 옥고를 치름 ● 1923년 11월 안동 풍산소작인회 집행위원 ● 1924년 4월 조선노농총동맹 상무집행위원 ● 1925년 4월 조선공산당 창당 참여, 고려공산청년 회 조직부장 ● 1925년 12월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 ● 1926년 4월 조선공산당 ·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집 행위원으로 6·10만세운동 추진 ● 1926년 6월 7일 서울 자택에서 경찰에 피체 ● 1928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선고 ● 1930년 4월 7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