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page
2025년4월30일 수요일 5 (제220호) 관향조 종친회 근세에 이르러 많은 참봉을 배출하면서 숭덕전과 신 라10왕릉수호에혼신의힘을경주하고있어전국성손 들의 모범이 되고 있는 월성박씨대종회(회장 준태)는 지난13일(음3.15)관조월성대군의춘향대제를경북경 주시단소(삼릉옆)에서춘학전시조왕릉참봉의집례 로 동우 전 유리왕릉 참봉, 준환, 준홍 현종이 초헌, 아 헌, 종헌으로 헌작하고 갑식 전 참봉의 독축으로 엄숙 봉행되었다. 월성대군은경명왕의제8왕자로오랜세월문헌이무 징(無徵)하여 안장지(安葬地)를 실전, 종의로 1978년 에현위치에설단하여향화를받들며대군의아들고려 조문과에좌사간(左司諫)으로월성군(月城君)에봉해 진 견(甄, 2世), 손자 판예부사(判禮部事) 월성군(月城 君)호(灝,3世),증손예부시랑(禮部侍郞)영록(永祿,4 世),현손 호부상서(戶部尙書) 정세(貞世, 5世), 6世 문 하시랑(門下侍郞)봉(封)월성군(月城君)방량(方亮), 7세(世)문하시랑(門下侍郞)박(珀)은,8세(世)호부의 랑(戶部議郞)지(智),9世추밀원사(樞密院使)천가(天 佳), 10世 대릉직(戴陵直, 永陵直) 인육(仁育), 11世 공 조전서(工曹典書) 겸형(兼亨), 12世 문하시중(門下侍 中)유(瑜)등의 단소를 대군단소 옆에 모시어 이날 함 께제향을받들었다. 문하시중 유(瑜)의 아들 구(龜,월성대군 13世)는 중 군사정부령(中軍司正副令)을 지냈으나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에 은거하였다가 나중에 인천에 있는 산중에 은거하고 있어 이 산을 장아산(藏我山)이 라 불려졌다.그 후 조선 태종이 여러 차례에 걸쳐 벼슬 을하사하며불렀으나끝까지 절의(節義)를지켰고,망 경태(望京台)에 올라 망국 회한을 통곡으로 달래다가 장아산에서일생을마쳤다. 그의 아들 간(幹)은 양신(良臣,슬기롭고 어진 신하) 의한사람이다.그는아버지가불사이군의충절을지키 고있어섣불리벼슬길에나가지못했으나,그때는그때 요 이때는 이때라고 유명(遺命)하심에 따라 태종 16년 (1416년)친시(親試)에 처음으로 응시하여 유학(幼學) 으로 제1등에 올랐다. 이로부터 문명이 조정에 휘날리 게 되었고, 간관(사간원과 사헌부의 관리)에 발탁되어 곧은말로당세를흔들었다. 특히성균관유생을위하는것이많았는데이로인하 여호학(好學,학문을좋아하는선비)사람으로좋은소 문이나라에더욱퍼졌다. 세종 16년(1434년) 성균관 대사성에 오르고 단종원 년 호조참판, 단종 2년(1454년) 예문관 대제학 수(守) 판의금부사를 역임하고 증직으로는 의정부 좌찬성이 다.슬하에아들휘(徽),옹(雍),숭(崇),준(峻)등4형제 를 둠으로서 크게 번성하게 되고, 이후 이들 후손들은 참의공파(휘 덕승, 월성대군 18世), 학수공파(휘 학수 , 18世),사정공파(휘 사문,17世), 고암공파(휘 민록, 21 世),관포공파(휘홍미,19世),전적공파(휘사증,25世), 세마공파(휘 대이, 20世), 계당공파(휘 대항, 20世), 진 사공파(휘 대순, 20世), 설봉공파(휘 대함, 20世), 후포 공파(휘 홍업, 19世), 생원공파(휘 원룡, 18世), 송애공 파(휘 여룡, 18世), 해강공파(휘 성룡, 18世), 운암공파 (휘 홍수,19世),추산공파(휘 홍중,19世),참판공파(휘 경룡, 18世), 락재공파(휘 세명, 21世), 현감공파(휘 종 겸, 16世), 인재공파(휘 사문, 16世), 무계공파(휘 민수, 18世),성은공파(휘간,21世),락옹공파(휘응상,19世), 중군공파(휘 길, 21世), 유촌공파(휘 종남, 20世), 송은 공파(휘 위, 21世), 임계공파(휘 민영, 18世), 청계공파 (휘 민화, 18世), 고은공파(휘영손, 20世), 진사공파(휘 경문, 16世), 운계공파(휘 응강, 19世), 부사공파(휘 인 득,20世)등32개소파로분파되어세계를이룬다. 신라월성대군춘향대제봉행 월성대군춘향대제가지난 13일봉행된가운데전국의300여성손이 참례하고있다. 묘소가실전된12世설단함께봉행븣전국32소파종원등200여성손참례 박동우초헌관(左)이 음복례를하고있다. 월성재 및 단 소 전경 경명왕의아들로완산지역을식읍으로봉군된 완산대군의 시향이 지난 13일 오전 10시 30분 전 북장수군계남면장안리신도비에서있었다. 이날 제향은 순영 대종회장이 집례를 맡아 종 성 성기 현종이 초헌관으로 헌작하고 이어 봉현, 순도 현종이 각각 아헌과 종헌관으로 헌작하고 순영회장이독축하였다. 이어추원재로옮겨입향조양성재공을비롯1 6대(代) 48위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이 질서정연 하게엄숙한분위기속에서제향이봉행되었다. 완산대군의신도비는2008년생원공파종회에 서 건립비용 전액과 부지를 마련하고 건립 후 매 년 생원공파 주관으로 향화를 받들고 있으며 분 적된 무안박씨 종중에서도 수시로 들러 참배하 고있다. 신도비가 있는 추원재는 전주박씨 생원공파의 대표재실이다.입향500여년이넘도록조상(祖上) 을 숭모하는 재실(齋室)이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던중대군 의35세손규현(珪鉉),동현(東鉉),수 현(水鉉), 태현(太鉉)과 후손인 순권(淳權) 등이 뜻을 모아 1977년 3월 착공하여 후손들의 노력으 로 그해 9월말에 준공하였으며, 입향조인 양성재 공이하선조의재숙소로사용하고있다. 전주박씨 장수의 입향은 1500년 경이다. 입향 이후 선조의 삶과 사상은 애민과 지역의 학풍에 있다. 입향조 양성재공(휘 삼윤)은 중종조의 생 원으로그의아들석령(碩齡)의호는계동(溪東) 으로 명종조에 생원으로 효행이 뛰어나 효의세 가(孝儀世家)로도불러지고있다. 전주박씨대종회‘완산대군’시향봉행 추원재16대(代)48위의제향 완산대군신도비,전북 장수군계남면장안리 전주박씨추원재제향광경 경기묘는 무안박씨 삼만 여 세대 70,000여 명의 총 본산(本山)으 로 지난 3월 29일(음3 .1) 봉행된 세일제에 참 례하기 위해 중앙종친 회를 비롯 해남파 노성 파 진도파 등 관광버스 를 대절 전국의 300여 후손들이 속속 찾아오 면서 인산인해를 이루 었다. 이에 봉두 원로고문 은 연신 참으로 감사하 다는인사와함께성기전함평향교전교(무안파 회장)의 “執禮贊引先就階間拜位 再拜(집례찬인 선취계간배위 재배)집례와 찬인은 절하는 자리 로 나아가 두 번 절하시오 各 就位(각취) 제 자리 로 나아가시오”라는 선창으로 집례와 집사가 제 자리에 들어서면서 제향이 시작 된 가운데 효락 (孝洛) 영해파 전 회장이 집례를 맡아 질서정연 하고차분하게진행되었다. 우후공(虞候公)후손으로부산에서기업을운 영하고 있는 일근(一根 ,29세)현종이 초헌관으 로헌작하고일훈(日勳,32세,영해파)축관의독 축에이어아헌관성기(誠基,33세,영해파),종헌 관근만(根晩,32세)해남파청장년회전회장,경 조사에서는 병휴(炳休, 28세, 무안파), 경모사에 서는철우(哲右,30세,영암파)분헌관이향을피 우고각신위에잔을올렸다. 경기묘는 1967년(丁未) 9월 창건하여 1979년 (己未)5월중건하여지금에이른다. 경기묘(景基廟)본전에는관조1世휘진승(諱 進昇)의위패를봉안하였으며△경묘사(景廟祠 -東廟)에는 2世 금자광록대부 좌복야(金紫光祿 大夫 左僕射) 휘 섬(諱 暹)을 주벽으로 하고 4世 보국숭록대부 상장군(輔國崇祿大夫上將軍) 휘 유(諱찮 )5世보국숭록대부 상장군(輔國崇祿大 夫 上將軍) 휘 성기 (諱 成器), 6世 금자 광록대부 좌복야(金 紫光祿大夫 左僕射) 휘 교(諱 넴), 6世 은 청광록대부 밀직사 (銀靑光祿大夫 密直 副使)휘부(휘 ).7 世 은청광록대부 영 동 평장사 면성군(銀 靑光祿大夫 領同 平 章事 綿城君) 휘 문 오(文.晤), 7世 문정 보국정헌대부 호부상서(輔國正憲大夫 戶部尙 書) 휘 문정(諱 文正)의 위패를, △ 경조사(景祚 祠-西廟)에는 3世 윤위 보국정헌대부 검교대장 군(輔國正憲大夫 檢校大將軍)휘 윤위(諱 允位) 를주벽으로7世금자광록대부공부상서(金紫光 祿大夫 工部尙書) 휘 문연(諱 文衍), 8세 흥록대 부이조총랑(興錄大夫吏曹摠郞) 휘 윤유(諱 允 ),9世 통정대부 한성부소윤(通政大夫 漢城府 小尹)휘천무(諱天茂)10세보국숭록대부령중 추부사 병조판서(輔國崇祿大夫 領中樞府事 兵 曹判書) 휘 의룡(諱 義龍),11世가선대부형조참 판(嘉善大夫 刑曹參判) 휘 강(諱 綱), 12世 가선 대부호조참판(嘉善大夫戶曹參判)휘형(諱亨) 의위패를봉안하고있다. 한편 이날 초헌관으로 헌작한 일근 현종(경 영학박사)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선박관련중소기업(광림마린태크)를운영하며 타고난 숭조심으로 선조 위선사업에 최선을 다 해와 밀양에서는 그의 숭조심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무안박씨경기묘(景基廟)세일제봉행 전국300여성손추원보본의정성다해 무안박씨관조(휘진승)를비롯한 상조(上祖)의신위를모시고있는경기묘 세일사가지난 달 29일봉행된가운데 이른아침부터전국의성손들이 찾아와인산인해를이룬다. 경기묘 제관, 왼쪽부터 찬인 준, 집례 효락, 아헌관 성기, 초헌관 일근, 종헌관 근 만,축관 일훈順 박일근 광림마린태크 대 표이사(경영학박사)가 초 헌관으로 헌작하고있다. 대전광역시 서구 원도안로241번 길 16(도안동 1003) 소재 돈파사 춘 계제향이지난20일진잠향교주관 으로 충주박씨 종원과 지역유림 등 이참석한가운데있었다. 이날 제향은 조선조 명재상(영의 정)으로 청렴함을 잃지 않았던 사 암박순선생과학문이뛰어나사표 (師表)가된돈옹공휘희성,오한당 공휘희철형제,제호공휘로,여흥 인민재문선생등의높은학덕을기 리기위해남명진전성균관부관장 (전충남대 교수),성균관 전의 윤태 경(진잠향교 장의),이은규 전 대전 시 서기관(진잠향교 장의) 순으로 헌작하고 축관은 정상현 장상현 진 잠향교장의,집례공광열진잠향교 의전 수석, 직일은 김동기 전 건양 대총장이맡았다. 돈파사가 처음 지어진 것은 1781 년(정조5)이다. 그러나 대원군 때 전국적인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 되었다가 1924년 옛 터에 비를 세웠 고,1966년후손들에의해다시세워 졌다. 매년 음력 3월 23일에 제향이 올려진다.돈파사가 있는 가돈리는 옛부터 충주박씨들이 세거해 오던 곳인데 이곳에 사우를 건립하면서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박순(朴淳) 을비롯하여참의공(휘진)의5세손 으로 위기지학(爲己之學,자기수양 을 위한 학문)에 뿌리를 두고 화려 함을감추가살아사표가된박희성 (朴希聖), 박희철(朴希喆) 형제, 생 원공 휘 안장의 증손으로 진사시에 오르고 사림의 추천으로 의금부도 사에 제수되었으나 공명을 바라지 않고,아버지를봉양하며오직학문 에만 전념 했던 박로(朴輅) 그리고 민재문선생을배향하였다. 박순을 제외한 나머지 네 사람은 비슷한 무렵의인물들로 사군자(四 君子)라 불리웠다. 이 가운데 박희 성과박희철은친형제이다. 븯돈파븯라는이름은박순의행적에 서 비롯되었다. 박순이 영의정으로 있을때는사람들이동,서인으로분 열되어 대립하던 때이다.이를 조정 하려던 박순은 이이(李珥)와 함께 동인들 로부터 서인으로 지목되어 탄핵을 받게 되자 정치에서 물러나 영평(永平)의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갔다. 이같이 산비탈로 물러나 몸을 숨긴다는 뜻의 븮돈파븯를 박순 의후손들이이사우에붙였던것이 다. 돈파사 앞 좌측에는 하마비(下馬 碑)가, 삼문과 이어진 담장에 붙여 서는 돈파사유허비(豚坡祠遺墟碑) 가 각각 서있다. 유허비에는 븮오선 생돈파사유허비(五先生豚坡祠遺 墟碑)븯 란 글이 앞에 새겨져 있고, 뒷 면 비문은 김녕한(金寗漢)이 짓고 윤용구(尹用求)가 써서 1942년에 세운것이다. /자료제공충주박씨판서공박열근 대전돈파사(遯坡祠)춘계제향봉행 지역유림발길이어져,충주박씨사암박순 등4인과여흥(驪興)민재문의학덕기려 충북 옥천군 향토유적 2009-1호 로 지정된 원덕사가 후손들의 관심 저조로 지난 3월 29일 정기총회를 열어임기만료된임원진구성을해 야함에도총회조차열지못하는큰 어려움을겪고있다. 이날제향과총회를열기위해50 여명의 임원진에게 서면과 SNS를 통해 공지하였음에 19명만이 참석 겨우 제향만 봉행하고 5월 중순경 임시비상대책총회를갖기로했다. 충북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중구 봉아래에있다. 1922년(壬戌)봄에 승지공(朴仁 齡 :충헌공 휘 陟의 후손)의 묘 아래 에 후손 박만구(朴滿九)가 멀고 가 까운 성손과 같이 사우(祠宇)를 지 을것을상의하고같은해동짓날에 밀성대군의위패를봉안하였으며1 923년(癸亥)6월5일 에 8도의 후손 들이 대군의 후예인 19중조를 배향 했다. 49년 후인 1972년(壬子)11월 7일 에 1위를 추배하고(판서 초암공 휘 麟祐)또 12년 후인 1984년(甲子)11 월동지일에 1위를추배(정랑공휘 粹)하여 원덕사라 편액을 걸었으며 매년3월1일합제를지내고있다.위 판(位版)은 신라왕자 밀성대군 휘 언침(新羅王子 密城大君 諱 彦 ) 주벽으로 하고 동벽(東壁: 동무, 11 位)에 밀성부원군 태사공 휘 언부 (密城府院君 太師公 諱 彦孚).좌복 야공 휘 언인(左僕射公 諱彦仁).판 도판각공 휘 천익(版圖版閣公 諱 天翊). 사문진사공 휘 원(四門進士 公諱元).사헌부규정공휘현(司憲 府 糾正公 諱 鉉).영동정공 휘 원광 (令同正公 諱 元光).전법판서공 휘 인우(典法判書公 諱 麟祐). 대제학 공휘시용(大提學公諱時庸).구산 군 휘 천(龜山君 諱 횡 ). 이조정랑 공 휘 수(吏曹正郞公 諱 粹). 수사공 휘 근(水使公 諱 瑾),서벽(西壁:서 무,10位)에 도평의사공 휘 언상(都 平議事公 諱 彦祥). 밀직부사공 휘 양언(密直副使公 諱 良彦). 삼사좌 윤공 휘 을재(三司左尹公 諱 乙在). 밀성군 충헌공 휘 척(密城君 忠憲 公 諱 陟). 밀직부원군 휘 중미(密直 府院君 諱 中美). 태안군 양정공 휘 원의(泰安君 惠文公 諱 元義).정국 군 휘 위(靖國君 諱 쭈 ). 창원군 혜 문공휘령(昌原君襄靖公諱齡).군 수공 휘 치온(郡守公 諱致溫).부호 군공휘태익(副護軍公諱泰益)등2 1현을배향하고있다. 그러나 배향된 선조의 후손들이 찾아오기는커녕수십년소식이끊 긴 종중도 있어 집행부를 곤혹스럽 게하고있다. 한편 이날 봉행된 제향은 박영덕 영동정공파 전 회장이 집례를 맡아 차분하게 진행한 가운데 휘식(군수 공후),만식(구산군후),문희(충헌 공 후) 현종이 각각 차례대로 헌작 하고 시형 전 회장(밀직부원군 후) 이축관으로독축했다. 밀성박씨‘원덕사’시향봉행 밀성대군비롯한22현조(顯祖)음덕기려븣참석저조로임기만료된임원진구성못해 원덕사 제관, 앞줄 왼쪽부터 석태 회장, 시형 축관, 영덕 집례, 문희 종헌관, 만식 아 헌관 , 휘식 초헌관 , 원환 고문 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