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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 대정면 “나는 예수교 장로로 있으니까 반동으로 몰렸죠. 산에서 와서 집에 불도 붙여버리고 하니 밤에는 늘 지서에 와서 잠을 잤어요. 일 년을 꼬박 그렇게 살았죠. 대정읍에 우익 계라는 사람이 딱 11명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산사람들한테 몰려서 견디지를 못했어 요. 그때 열한 사람… 상모에는 허창현. 그 어른은 생업을 버리고 우리와 같이 지서에서 살았어요. 지서에서도 입초를 서야 하니까 잠을 못 잤지요. 하모에 허문표, 신평에 강필 생, 허성제 장로, 이태방…. 그 후에… 이름은 다 잊어버렸어요. 동일리 강왈침이는 죽 어버린 때고…. 허만필 씨는 말은 이렇다 저렇다 해도 우리하고 자보지는 않고. 허만필 씨는 열한 명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문: 모슬포 우익인사 중에서도 열한 명만 거론하시는데 뭘 기준으로 말씀하시는 것 입니까? 답: 산사람들하고 싸우고… 뭐. 그 사람들이 자꾸 죽인다고 오니까 집에 있으면 공포 심에 잠을 못 잤어요. 그래서 집에서 잠을 자지 못하고 한 1년 동안 지서에서만 살았던 사람들을 말해요. 모슬포에 성을 쌓기 전부터 동네 어디서 자면 그 사람들이 나를 잡으 러 오고 하니까 지서에서 산거죠. 지서 습격은 없었어요. 원래 지서에는 4·3이 나니까 얼마 없어 성을 쌓았죠. 우리가 가서 쌓았어요. 나도 갔었는데 지서땅만 성으로 뱅 둘 렀어요. 가시 베어다가 쌓아 놓고, 정문에 초소 서고 했어요. 문: 서청은 몇 명이나 있었습니까? 답: 우리가 지서에 살 때 민보단이 생겼어요. 특공대도 생겼고, 서청도 들어왔어요. 서청은 4·3사건이 나니까 들어왔는데 지서에서 같이 살았어요. 그때가 30명 정도? 위 험할 때였죠. 서청은 날짜별로 한 사람도 오고, 세 사람도 오고 하다 나중에는 한 30명 된 거죠. 지서 마루방이 별로 크지 않았는데 앉아서 회의할 때나 지서장이 어디 가라, 어디 가라 할 때 모여 있는 것을 보면 최고 많을 때가 한 30명 됐어요. 또 서청은 민간 인 복장을 했어요. 자기네끼리 형사라고 하면서, 이형사, 고형사라고 부르면서 다녔죠. 난 그 사람들이 무슨 직함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상한 건 그 사람들이 어디 사 는지 잘 모른다는 거예요. 민간인 집에 살았는데…. 그 사람들 때문에 민간인들이 많이 고생했죠. 사상적으로 걸려 있는 집에 가서 못 살게 굴면서 다 벗어달라면 어쩌겠어요? 다 벗어줘야지. 서청들에게 명령은 지서장하고 군부대 부대장이 했어요. 지서장이 부 대에서 무슨 명령이 왔다 하면 그에 따라 내린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