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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1949년 1월 18일: 모슬포지서는 제3구 경찰서로 승격돼 대정면과 안덕면, 한림면을 관할함 1949년 2월 13일: 제3구 경찰서가 모슬포경찰서로 개칭됨 1954년 6월 10일: 현 위치로 모슬포경찰서 청사를 신축해 이전함 (이전까지는 지서 건물을 개조해 사용함) 1957년 7월 26일: 모슬포경찰서가 폐쇄되면서 대정지서로 격하돼 현재에 이름 모슬포지서에서는 4·3 발발 직전인 1948년 3월 14일, 포고령위반 혐의로 구속 돼 있던 영락리 출신 양은하(27, 남)가 돌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후 양 씨는 고문치사된 것으로 밝혀져 담당 취조경관 고응춘 순경과 변태문 형사 등이 검속됐다. 이 사건 관련 피고인 6명은 몇 달 후인 6월 9일 제주지방심리원 법정 에서 열린 재판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백년이 모슬포지서와 양은하 사건을 기억했다. “원래 이름이 왜정 때는 대정지서라고 하다가 해방되니까 또 모슬포지서라고 했어 요. 대정골에 있는 것은 해방 후에 생긴 겁니다. 4·3사건이 나니까 지서가 대정골에도 생기고, 무릉리에도 생겼어요. 대정골에 생긴 것을 대정지서라고 하고, 모슬포에는 모 슬포지서라고 했죠. 그 자리가 이 근처, 항구로 가는 길…. 지금 신협사무소 바로 앞에 있었어요. 3구 경찰서까지 거기서 했죠. 4·3 직전에 고문치사 당해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여기서도 다 알고 있었어요. 2·7 사건으로 검속돼 취조 받던 청년이 고문치사 당한 걸로 알아요. 그것이 도화선이에요. 4·3사건이 나는. 죽은 후에는 소문이 각처에 막 났어요. 아무개, 누구누구 취조 받다가 고문당해서 죽었다. 사람이 아파서 죽은 것도 아니고 맞아서 죽었다고 하니까 그때 문 제가 상당히 컸었죠.” 한편 모슬포에서는 무장대가 우익인사를 습격해 살해하는 사건이 몇 차례 발생 하자 이들은 집에 있지 못하고, 밤에는 지서에서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이백년이 당시를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