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page

495 조천면 를 수색하여 청년들을 학살함. 이날 김갑섭(19, 남) 등 12명이 총살됨 (함덕리-학살터-머체왓, 참조) 그 후 토벌대는 함덕리의 진동산과 머체왓, 골연못 등을 총살 장소로 사용하였다. 1948년 12월 1일: 한백흥(51), 송정옥(55), 김기준(21)은 관뒛모살에서 토벌대에 총살됨 (함덕리–학살터 관뒛모살 / 비석–한백흥·송정옥 추모 비, 참조) 12월 17일: 외꼴절 스님 신홍연(속명 신농치, 47세, 남)이 장작을 무단으로 사용한 토벌대에 항의하다 함덕지서에 연행된 뒤 남모루(남선 모루)에서 총살됨 9연대와 경찰들의 수색 작전은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됐고 더욱 악독해졌다. 사 람들이 점점 마을에 살 수 없게 되면서 한라산자락으로 숨어들었다. 이에 9연대 는 2연대와 교체 직전 자수작전을 실시했다. 이 작전은 ‘자수하면 살려주고, 양민 증을 준다’고 선무공작했으나, 결과적으로 토벌대의 실적올리기 수단에 불과했 다. 많은 청년들이 자수하기 위해 군부대로 찾아갔다. 당시 함덕리 청년 중에는 자수한 사람이 많지 않았으나 신촌리나 와흘리, 조천리, 선흘리, 신흥리 청년들은 줄지어 자수했다. 9연대는 이들을 선별해 100여 명을 트럭에 싣고 제주시로 향 했다. 이들은 1948년 12월 21일 제주읍 아라리 박성내에서 집단총살된 후 불에 태워졌고, 학살을 면한 자수자 중에도 군법재판에 회부돼 형을 받고 타지방 형무 소로 보내진 사람이 많았다. (아라리-학살터 박성내, 참조) 1948년 12월 23일: 김도준(50) 등 8명은 보초를 잘못 섰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 가 함덕 모래사장에서 총살됨 12월 26일: 부연배(여, 17)와 이근후(여, 17)가 함덕리 서우봉에서 총살됨 (함덕리–학살터 몬주기알·생이봉오지, 참조) 1948년 12월 29일, 2연대로 진압부대가 바뀐 뒤 강경 토벌작전이 다시 전개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