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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on Kunsan Pusan Wonsan Iwon 인천 상륙 시기에 맞춰 낙동강 전선도 대대적인 반격 작전이 벌어졌다. 그 동안에 북한군의 두 배 병력을 유엔군이 확보하고 있었음에 불구하고 반격은 부진한 성과만 보였으나, 9월 20일 무렵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사실이 낙동강 전선 북한군에 알려지자 사기를 잃고 붕괴되고 말았다. 낙동강 전선 일대의 북한군 들 중 2만이 넘는 정도의 병력만이 후퇴에 성공했다. 상륙작전과 서울탈환 그리고 낙동강에서 반격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9월 말까지 38선 남쪽의 북한군을 격멸하고 전쟁 이전 상태를 회복했다. 10월 19일 국군 1사단이 평양에 최초로 입성했고 곧 미 1기병 사단이 합류했다. 평양 탈환전에 참여한 국군의 7사단도 거의 동시에 평양에 입성했다. 잔적 소탕작전이 완료된 10월 30일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시청에서 성대한 환영식을 거행했다. 1950년 10월 중순, 작전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한 국군과 유엔군은 추수감사절까지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추수감사절 공세를 계획했다. 북진작전중인 각급 부대는 국적 관계없이 압록강, 두만강을 향해 총진격을 서두르게 되었다.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