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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 제주4·3유적 Ⅱ_ 서귀포시편 했고, 소대장이 총알을 나눠주었으며 중대장은 “한사람이 한명씩 총살하라”는 명 령에 대원들이 일렬종대로 대기하고 있다가 GMC트럭에서 내리는 민간인을 이 곳 호 가장자리로 끌고 와서 한명씩 세워놓고 지휘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해 시신을 호 안으로 떨어지게 한 장소이다. (백조일손 총살집행 참여자 진술) ⑨ 만벵디 학살터 안내판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한림어업조합 창고와 무릉지서에 예비검속되었다가 1950년 8월 20일(음 7월7일)에 희생된 후 1956년 3월 30일 62구의 유해를 수 습하고 한림면 금악리 275번지 만벵디 공동장지에 안장된 영령들 희생장소이다. (유족회 진상규명) ⑩ 섯알오름 탄약고터 안내판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에 의한 섯알오름 양민학살터 이곳은 왜정 때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하여 구축한 도내 최대의 탄약 고였으며, 해방 이후 미군에 의해서 폭파된 곳이다. 1948~1949년 1만 5천명~3만명(미군 정보자료 추정치, 제주도의회 접수 2000년 1월 현재 약 1만 5천명)의 양민이 군경토벌대에 의해서 학살된 ‘제주사 건’ (통칭 ‘4‧3사건: Red Hunt’)이 진정국면에 접어들 무렵,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치안국의 불법적 ‘예비검속(Preventive Detention)’ 광풍(狂風)이 몰아 쳐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경찰에 의하여 ‘강제검속’을 당하였다. 예비검속자들 중 약 1천명(추정- 모슬포 252명, 서귀포 240~250명, 성산포 6 명, 제주 500~600명)이 넘는 제주인들은 당시 계엄군(육군본부 정보국 CIC(방 첩대)와 해병대 사령부 정보과)에 의해서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한 밤중에 무참 히 총살, 이름 모를 산야에 암매장되거나 깊은 바다에 수장되었다. 현재까지 이곳 만이 당시의 비참했던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제주도내의 유일한 학살터이다. 50년 8월 20일(음 7월 7일) 모슬포 경찰서에 예비검속된 357명 중 252명(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