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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1925년생) 여사가 일금 4,500만원을 지원하여 재현(再現)된 시설물이다. 특지(特志) 유족 이상숙(李相淑:1925년생)은 안덕면 덕수리 1944번지 전주이 씨(全州李氏) 부친 이군평(李君平) 씨와 모친 김해김씨(金海金氏) 김태생(金太生) 여사의 2남1녀 중 외동딸로 1945년 만20세에 한 살 연하인 상창리 강성휴(姜聖 休:1926년생) 씨와 혼인하였다. 부군(夫君) 강성휴(姜聖休)가 안덕초등학교 교사 (敎師)로 근무하던 중,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에서는 예비검속 령을 발령하였고 강성휴(姜聖休)선생은 지식인(知識人)이라는 이유로 모슬포 절 간창고에 구금되었는데, 전세(戰勢)가 불리해짐에 따라 1950년 8월 20일(음력 7 월7석) 새벽 이곳 섯알오름에서 정부군에 의해 총살되었다. 이상숙(李相淑)여사는 부군(夫君)이 학살되던 날 숨가삐 학살현장(虐殺現場)에 왔었는데, 뒤얽힌 많은 시신(屍身)들 중에 첫눈에 띄인 것이 면회 때 갈아입도록 건넸던 농(籠)속에 있던 옷(衣服)이었다. 시신을 거두려는 순간 군경이 제지하는 바람에 그대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고, 그날부터 경비가 강화되어 이곳은 민간인 출입통제(出入統制)지역이 되었다. 날마다 시신을 거두어오기 위해 맴돌던 차 날 이 가고 6개월을 넘긴 신묘년(辛卯年) 2월 초 하늘 찌푸린 새벽, 경비군(警備軍)이 나오기 전에 시신을 발굴하고 안덕면 상창리 소유밭(所有田)에 안장하였다. “왜 유품마저 불태웠는지…” 찢겨진 가슴안고 살아온 70년. 이제는 92세의 할 증거인멸의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