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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 대정면 2001. 8. 21. 만벵디 유족회 제1회 위령제 봉행 2002. 2. 4. 민주당 대통령 경선자 노무현, 정동영, 이인제 묘역, 학살터 참배 2002.4.5. 23위 강제이장묘 중 7위 재(再)이장 2003. 5. 31. 4‧3진상보고서 공포 2006~2010. 섯알오름 학살터 성역화사업 2007. 11. 13. 진화위 섯알오름사건 218명 희생자로 결정 2009. 8. 26. 국방부장관 이상희 국가대표 사과 2010. 8. 11. 국가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2010. 9. 20. 섯알오름사건 행불유족회 결성 2010. 12. 20. 섯알오름의 한(恨) 60년사 발간 2012. 5. 8. 1심(서울지방법원) 원고 승소 2014. 9. 18. 2심(서울고등법원) 원고 승소 2015. 6. 24. 대법원, 심리불속행 기각, 승소 <5~6면>은 사건경위를 영문, 중문, 일문으로 기록 ⑤ 증거(證據)인멸의 장소 여기는 대학살을 감행(敢行)한 후 증거인멸을 위해 유품(遺品)들을 불태웠던 장 소이다. 예비검속 구금(拘禁)장소는 협소(狹小)했다. “넓은 장소로 간다”고 유인 (誘引)하여 희생자들은 생활 소지품(所持品)들을 모두 트럭에 실었다. 1950년 8 월 20일(음력 7월7석) 새벽 트럭에 실려가며 고향마을을 벗어나 이곳 길을 향했 을 때, 그제서야 자신들의 죽음을 예측했었는지 신었던 검은 고무신들을 벗어던 지며 가는 길을 가족(家族)에게 알리려 했었다. 길위(路上)에 검은 고무신들을 따라 유족(遺族)들이 달려왔을 때는 이곳에서 담요, 베개, 옷가지, 허리띠, 쌀, 부식 등 희생자들의 소지품(所持品)이 모두 불에 타고 있었다. 그날의 역사적 사실을 자각(自覺)함은 희생자의 원혼(寃魂)을 추모 하는 일로서, 당시에 남편 찾아 달려와 현장을 목격(目擊)했던 이상숙(李相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