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4page

48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참조/ 조천리-학살터-조천지서 앞밭, 참조) 무장대의 습격과 토벌대의 보복이 악순환되는 가운데 엄청난 희생을 치른 신흥 리 주민들은 1948년 겨울부터 민보단을 조직해 마을에 성을 쌓기 시작했다. 3m 높이의 겹담으로 쌓은 성은 1차로 마을을 휘감았고 일주도로를 따라 조천지서까 지 외성을 쌓아 남녀노소 구분 없이 보초를 섰다. 현재 4·3성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으나 주민들은 마을 주변의 산담과 밭담을 등짐으로 지고 날랐던 당시의 고난 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신흥리의 주요 학살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1월 4일: 무장대의 조천면사무소와 조천지서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함 덕리 주둔 9연대가 강종규(26, 남) 등 19명을 리사무소 부근에 서 학살함 11월 5일: 김태배(경찰)가 사라봉 앞에서 한석휴(30, 남)를 총살함 11월 13일: 토벌대가 손대준(58, 남)을 총살하고 민가 20여 호를 불지름 12월 21일: 자수사건으로 고희경(22, 남) 등 11명이 아라리 박성내에서 토 벌대에 학살됨 1949년 1월 24일: 경찰은 도피자 가족이라며 함덕지서로 연행된 강남원(52, 여) 등 5명을 함덕리 동쪽에서 총살함 2월 1일: 강유생(29, 여) 등 14명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조천지서 앞밭에서 토벌대에 학살됨 (조천리-학살터-조천지서 앞밭, 참조) 무장대에 의한 학살도 몇 차례 이어졌다. 1948년 10월 28일: 무장대가 김태배(경찰) 친인척 5명을 습격하여 살해함 11월 11일: 무장대가 김태배(경찰) 친인척을 재차 습격하여 김신생(48, 여) 등 9명을 살해함 신흥리 지역 주민들과 김태배 경찰과의 원한관계는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돼 왔 다고 한다. 그 감정의 골이 4·3 시기에 한층 깊어져 무장대는 김태배 가족을 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