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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 조천면 3. 신흥리 신흥리는 1910년 일제강점기 초까지만 해도 동쪽은 함덕리, 서쪽은 조천리에 속해 있었다. 그러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이 이루어지면서 왜개(倭浦 혹은 內 浦, 古浦) 지역을 중심으로 조천리와 함덕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해 신흥리로 분리·독립했다. 신흥리는 조천면사무소 소재지인 조천리와 군주둔지인 함덕리 사이에 위치한 한적한 마을이었다. 4·3 시기 200여 가호의 주민들이 모여 살던 신흥리는 무장대 의 습격과 이에 대한 토벌대의 보복학살로 많은 주민이 희생됐다. 1948년 10월 28일 무장대는 신흥리 출신 경찰가족을 살해했다. 그러자 토벌대 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11월 4일 마을에 갑자기 들어와 주민 19명을 집마당과 길 가에서 무차별 총살했다. 며칠 후인 11월 11일에는 무장대가 또다시 경찰가족을 살해했고, 그 이틀 후인 11월 13일에는 토벌대가 마을에 들어와 도피자의 가옥 20여 채를 골라 불태웠다. 이 과정에서 병환 중인 손대준(58세)이 숨졌고, 조천지 서에 잡혀가 고문을 받다 희생된 이명찬이 두개골이 깨진 상태로 마을 인근의 밭 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함덕이나 조천의 민간인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주민들도 도 피자 가족이란 이유로 1948년 12월 21일에는 박성내에서 11명, 1949년 2월 1 일에는 조천지서 앞밭에서 10여 명이 학살됐다.(제주읍-아라리-학살터-박성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