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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 대정면 리 거주 유계돌 씨가 학살현장을 목격하고 바다로 고기잡이 가던 상모리 이경익 씨와 정공삼 씨에게 집단학살 사실을 알리자 이 두 분에 의해 유가족들에게 비보 (悲報)가 전해졌으며 전갈(傳喝)을 받은 300여명 유족들이 학살현장에 집결하여 시신(屍身) 27구를 수습할 무렵 경찰들이 공포를 쏘며 무력적으로 해산을 유도하 자 겁에 질린 유족들은 울분을 토하며 수습하던 시신을 구덩이에 원상태로 회복 시키고 해산했다. <2차> 유족들은 상시 경찰의 감시와 연좌제에 의해 입신양명의 길이 막힌 채 절치부심(切齒腐心)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중 만벵디 유족들은 1956년 3월 30일 (음력 2월 19일) 새벽을 이용 60구의 유해(遺骸)를 발굴(發掘) 만벵디 공동장지에 안장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백조일손 유족들이 4월 28일 학살 현장에서 유 해(遺骸)발굴을 시도 하였으나 무장군·경의 저지로 또다시 실패했다. <3차> 그후 유족들의 관계당국에 꾸준한 탄원과 청원에 의해 유해발굴이 허용 되자 동년 5월 18일 시신(屍身)이 수장된 물웅덩이에서 양수기(상모리 좌용진 소 유)로 물을 퍼내어 149구의 유해(遺骸)를 발굴하였으며 그중 치아와 옷 유품 등 으로 신원(身元)이 확인된 17구는 각자의 묘지로 옮겨지고 자타식별(自他識別)이 되지 않은 유해는 준비된 칠성판 위에 머리뼈, 팔뼈, 다리뼈를 132구로 구성(構 成)하여 대정읍 상모리 586-1번지에 안장하고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라 명 명(命名)하였다. 한편 1961년 고철수집상들이 섯알오름 학살터 만벵디 희생자 발 굴 장소 인근에서 작업 도중 우연히 당시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해 2구를 발굴하 게 되자 그들은 정중히 예를 갖추어 섯알오름 남사면(南斜面)에 매장하였다고 증 언하고 있음 (고증자 : 전 도의회 부의장 姜豪男) 4. 통계(通計) (1) 면별 희생자 현황 지역별 한림 한경 대정 안덕 애월 제주시 서귀포시 기타 계 희생장 68명 64명 58명 33명 6명 1명 5명 17명 25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