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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최종 피난처를 제주도로 잠정 결정하여 계엄사령부에 송치된 252명 중 61명이 동년 7월 16일 정부군에 인계된 후 20명은 섯알오름에서 학살하고 나머지 41명 은 행방불명 상태인 가운데 동년 8월 20일 새벽 2시부터 5시 사이 세 곳의 구금 자를 순차에 따라 학살장소로 이송하는 과정에 자택에 있던 대정면사무소 공무원 이현필(李賢弼) 좌용운(左龍雲)을 비롯 정이환(鄭以桓:청년회 총무) 장성림(張成 琳:연초판매) 좌용문(左龍文:도정업) 이상봉(李上奉: 청년회간부) 등 6명을 학살 장소로 무단 강제 압송(押送)함 이승과 저승 간(間) 절연(絶緣)의 황천(黃泉)길에 신발을 벗어던져 족적(足迹)을 알리며 섯알오름 탄약고터에 이르자 앞에 이송된 한림수협창고와 무릉지서에 구 금되었던 60여명은 폭파된 탄약고 남사면에서 모슬포 절간창고에 구금되었던 130여명은 물웅덩이에서 모슬포 주둔 정부군에 의해 집단 학살한 후 시신을 가 족들에게 인도하지 않고 암매장하였으며 그 비인도적(非人道的)인 만행사실을 은 폐하기 위하여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군·경에 의한 경비를 강화하였다. (3) DNA검사로 60년의 한(恨)을 풀다 1950년 7월 16일 41명을 집단학살한 가해자들의 함구령(緘口令)으로 희생자 들의 행방이 묘연(杳然)한 가운데 산방산 앞바다 수장(水葬)설 등으로 억측(臆測) 이 난무하여 60여년 동안 망연자실(茫然自失) 번민(煩悶)하던 차 2007년 11월 27 일 정뜨르비행장 민간인 학살장소에서 발굴한 유해의 DNA검사 결과(2010.3) 행 불자 41명 중 송대길(宋大吉 : 청년회임원) 김희전(金熙銓 : 대정교교사) 등의 신 원이 확인됨으로써 행방불명된 전원이 동일장소에서 학살된 것으로 추정하게 되 었으며 2010년 국가상대 손해배상소송에 동참하는 한편 양신하(梁信河 : 백조일 손유족회 고문)의 적극적인 탐문 조사과정을 통하여 당시 희생자 신원(身元)을 확 인하게 되자 예비검속 섯알오름사건 행방불명유족회를 결성하는 계기가 되었음. 한편 신원확인을 못한 수많은 유가족들은 하루 속히 DNA검사가 이루어지길 애타게 기다리며 국가(國家)에 대한 원성(怨聲)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3. 시신수습 및 유해발굴과 안장 (屍身收拾 및 遺骸發掘과 安葬) <1차> 1950년 8월 20일 새벽 섯알오름 근처에서 소를 관리하던 대정읍 상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