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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권 당시나이 84세
약력
1921년 12월 5일 경북 대구에서 출생, 대구 수창보통학교 졸업 후 우편국 근무
1938년 2월 일본으로 가서 매구로무선전신강습소 입학 후 수학
1942~1945년 태평양전쟁과 강제징집 위험을 피해 만주로 이주
1946년 3월 대구 <대중신문> 기자로 활동 중 미군정의 탄압으로 폐간
1960년 4월혁명 이후 <사회당) 경북도당 상임위원으로 활동
1961년 5월 5.16쿠데타 후 남북학생회담 추진 시민결의대회 조직 관련 박정희 정권에 체포됨
1964년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수배 당하여 피신
1968월 5월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권재혁 동지 등과 체포, 징역 5년 선고, 투옥
1973년 9월 5일 대전교도소에서 만기 출소
1975년 7월 사회안전법 발효로 신향식 동지 등과 지하 활동 돌입
1976년 2월 29일 이재문, 신향식 동지와 함께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결성
1976년 3월 3일 반공법 위반 체포, 징역 3년 선고받고 형기 만료 흐 전향 거부로 감호 처분
1980년 12월 23일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15년형 확정 판결
1988년 12월 21일 특별사면으로 출옥
1995년 2월 <범민련 남측본부> 중앙위원, 재정위원장 역임
1995년 11월 29일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사건으로 3년 6월 선고 후 형집행정지로 출소
2002년 <6·15공동선언실천과 한반도평화를 위한 통일연대>,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2005년 9월 21일 2003년 뇌졸중 발병으로 투병하던 중 운명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일제치하에서 태어나서 청년시절에는 일본, 만주 등에서 생활하였고, 8·15해방 후 대구로 귀환하여 <대중신문> 기자로 활동하였으나, 미군정의 탄압으로 신문이 폐간된 이후 생업에 종사했다. 4월혁명이 일어나자 (사회당 경북도당 상임위원으로 활동했고, 그로 인해 5·16쿠데타 후에는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후 권재혁, 이일재 동지 등과 함께 민족민주운동에 매진하다가, 1968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으로 또 다시 검거되어 징역 5년을 선 고받고 복역 후 1973년 출옥했다.
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선포와 1975년 사회안전법 발효로 민족민주운동가들을 합법적으로 감시, 투옥하는 엄혹한 시대상황을 맞아 지하 투쟁을 결심하고, 이후 이재문, 신향식 동지들과 함께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를 결성했으며, 1976년 3월, 반공법 위반 사건으로 검거되어 3년 형을 받고 전향을 거부하여 감호소에 수감되었다.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고, 1988년 출옥 후 범민련 등 통일운동에 전념하였고, 2003년 뇌졸중 발병으로 투병 중 2005년에 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