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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다. 이들은 1948년 당시 20대 후반의 동년배로, 일본에 유학 가거나 학병으로 징 집되었다가 고향에 돌아와서 청년사회운동을 주도했다. 이덕구는 조천중학원 역 사 교사, 김대진은 신촌국민학교 교사, 이순우는 이덕구의 큰형인 이호구의 아들 로 미군정청의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신촌리는 4·3무장봉기 결정을 내린 일명 신촌회의가 열린 곳이었고, 이로 인해 군경 토벌대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신촌리의 4·3희생자는 181명으로 주민들은 신촌국민학교 인근이나 함덕리 백사장, 조천지서 주변 등 마을 안팎에서 토벌대 에 학살됐다. 신촌리는 또한 무장대측으로부터도 큰 피해를 입었다. 1948년 1월 22일, 경찰은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의 강연을 들으러 나오라며 신 촌리 주민들을 학교운동장에 집결시켰다. 그리고는 수백 명의 주민들을 제1구 경 찰서로 끌고갔다.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에게는 남로당 가입여부를 대라는 경찰의 매질이 시작됐다. 경찰은 연행했던 주민들을 단계적으로 석방했다. 그러 나 이덕구 등 6명은 42일 만에 풀려났다. 당시 이덕구는 심한 고문으로 고막이 터 지고 발가락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한다. 2 1948년 12월 26일, 이덕구의 가족이 화북리 별도봉에서 집단총살됐다. 경찰은 두 달 전 10월 25일에 이덕구와 이좌구·이호구의 집을 방화하고, “이덕구가 항복 해 내려오면 가족들은 살려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을 전부 죽인다”는 내용의 삐라를 뿌렸었다. 그러던 경찰은 12월 20일께 이덕구 가족과 누님 가족을 포함 한 친인척 20여 명을 연행해 별도봉에서 총살했다. 이들 중 현재 확인된 사람은 김삼봉(68, 여, 모)·양후상(27, 여, 처)·이진우(7, 남, 아들)·김병숙(미상, 여, 장모) 등 이덕구 가족과 신수란(50, 여, 처)·이정숙(18, 여, 딸)·강정낭(25, 여, 며느리) 등 이호구 가족, 김계순(36, 여, 처)·이성우(15, 남, 아들)·이순이(3, 여, 딸) 등 이 좌구 가족, 이태순(35, 여, 누님)·강순덕(2, 여) 모녀 등 누님 가족, 그외 이중훈 (71, 남, 숙부)·김이순(미상, 여)·이신구(미상, 남)·이신자(미상, 여)·김상봉(17, 남, 머슴) 등 17명이다. 한편 무장대는 1949년 1월 19일 마을을 기습해 신촌국민학교를 전소시켰다. 다음은 신촌리의 주요사건이다. 2) 허춘섭 증언,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