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page

474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은) 갯벌이 되었어요. 손이 문작문작했죠. 봄이 나야 겨우 이장을 한 겁니다.” 당시 희생자는 강위창(20, 남)을 비롯해 김남일(31, 남, 이명 김석환), 김창숙 (20, 남), 김택선(26, 남), 김희종(25, 남), 박형윤(29, 남), 안진택(28, 남), 양우권 (28, 남), 이동춘(26, 남), 이용원(20, 남), 이성화(27, 남, 보성리) 등 11명이다. 그 외에도 이 부근에서는 학살사건이 자주 있었다. 1948년 10월 26일(19명): 금악리에서 전날 밤 봉화가 오르고 왓샤시위가 벌어짐. 토벌대는 날이 밝자 금악에서 청년 10명을 검거하고, 이곳 대정고 입구로 끌 고와 다른 마을주민들과 함께 학살함 일과리 – 문공삼(23, 남) / 금악리 – 강두규(24, 남), 강영대(26, 남), 고운빈 (26, 남), 고창효(20, 남), 김일권(27, 남, 금악리 민애청 반장), 김경희(40, 남), 박경주(20, 남), 박기석(25, 남, 금악국교 교사), 안봉길(46, 남, 금악리 구장), 양봉현(19, 남) / 신평리 – 강병엽(29, 남), 강성운(35, 남), 김문(34, 남), 문장 선(24, 남), 박도화(28, 남) / 무릉리 – 강인평(26, 남), 홍성찬(22, 남) 11월 14일(1명): 상명리 – 홍석하(19, 남) 대정고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