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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 대정면 나. 개요 모슬포에는 중산간 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지던 11월에 민보단이 조직됐다. 또한 주민들 표현대로라면 건강하고 산측에 협력하지 않은 ‘사상이 건전한 사람들’이 중심돼 특공대가 조직됐다. 특공대원은 하모리에만 36명 정도 됐다. 이들은 12명 씩 3개 소대로 나뉘어졌다. 상모리에도 특공대는 조직됐으나 하모리 특공대가 대 정면을 주도했다. 당시 대정면 특공대장은 가파도 출신 이원하였고, 하모리 책임 자는 송치수였다. 평상시 특공대는 민보단과 협조해 마을 순찰을 도는 게 주 업무였으나 산에서 습격이 들면 돌격조가 돼 일선에 나가 싸우기도 했다. 또한 특공대는 토벌대가 토 벌을 나갈 때에는 총알받이로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기도 했다. 이럴 때는 지서나 군부대에서 몇 명 동원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특공대는 민보단과 사무실을 같이 썼다. 사무실은 현재 장춘여관 자리였는데 지 금도 옛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공대원 학살사건은 1949년 1월 10일 발생했 다. 이 사건에 대해 고춘언이 증언했다. “특공대원들은 용감했어요. 이원하가 대정읍 특공대장이었어요. 원하가 하루는 경찰 이나 군대에서 총알받이로 나오라고 하면 죽창으로 대항이 안 되니까 군부대에 가서, ‘우리 특공대원들에게 무장을 주면 용감히 더 잘 싸우겠습니다’ 했어요. 부대에서는 ‘그 러냐’고, ‘그러면 씩씩하고 건장한 사람으로 해서 명단을 보고하라’ 했어요. 그래서 아 주 깨끗한 사람으로 11명 명단을 올려보냈죠. 그러자 부대에서는 이 사람들을 다 데려 오라고 하더니 가자마자 톡 가두면서 ‘이놈들 다 빨갱이다!’ ‘총을 주면 우리에게 대항 할 것이다’ 하면서, 무조건 몇 차례 두들겨 팼어요. 그러다 이원하는 1월 6일에 먼저 죽 고, 남은 열 사람은 12일에 다 죽었어요. 아무 이유 없이. 이원하가 명단 제출한 것이 죽기 일주일 전쯤인 것 같아요. 가장 씩씩하고 용감한 사 람들로 제출하니까 부대로 오라고 해서 이놈들 다 빨갱이라고 한 거죠. 그때 죽은 곳이 저 대정고등학교 앞에 있는 탄약고 옆이에요. 부대에서 200~300m 정도 돼요. 당시 길 서녘쪽이었는데 그 길이 지금은 고등학교에 편입돼 버렸죠. 이원하 씨도 거기서 죽었 어요. 날짜만 다를 뿐이에요. 그 사람들 보고 자기네 죽을 구덩이를 파라고 했어요. 그 사람들은 뭣도 모르고 판 거죠. 시신은 거의 5월 나서 처리하라고 했어요. 가보니 (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