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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주청년동맹 결성대회가 오후 1시부터 조천국민학교에서 대의원 100명, 기타 방 청자 300여 명이 참석하여 초만원을 이룬 가운데 김평원의 사회로 열렸다. “눈보라치는 엄한의 25일 조천면 민주청년대회는 오후 1시부터 조천국민학교에서 대의원 100명, 기타 방청자 300여명의 참석으로써 초만원의 성장리에 김평원 씨의 사 회로써 그 막을 열었다. 다음 이어 회원 일동이 민청가와 해방의 노래를 씩씩하게 합창 하여 민주청년의 의기를 울린 다음 김원근 씨의 개회사가 있었고 이어 임시 집행부 선 거로 들어가 김원근 씨, 김평원 씨, 김대진 씨, 김완배 씨, 김의봉 씨 5명의 의장단을 선 출하였는데, 때마침 모 의원의 긴급동의로써 박헌영, 허헌, 김일성, 조희영, 김택수의 5 인을 명예의장으로 추대할 것을 결의 만장일치로써 가결한 다음 경과보고 도대회 보고 일반정세 보고가 있은 다음 내빈축사로 들어가 인위 안세훈 씨 외 각계인사의 격려축 사가 있었고 대의원 대표로부터 이에 대한 답사가 있었다. 이어서 집행위원의 보결선 거가 있은 다음 토의사항으로서 △조직문제 △계몽선전 △체련문제 등을 토의한 다음 기타에 있어서 조천경찰지서 주임으로부터의 열렬한 격려의 인사가 있어 끝으로 민청 만세삼창으로써 오후 6시에 이르러 드디어 폐회하였다.”6 조선민주청년동맹 제주도지회가 1947년 1월 12일 결성된 후, 각 읍면지회 결 성에는 그때까지만 해도 지서장이 나와 격려사를 할 정도로 제주도 사회에서는 위세가 당당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47년 4월~5월, 미군정이 행정명령 1~2호로 우익 청년단체는 물론 좌익 청년단체인 조선민청의 해산을 명 령했다. 조선민청은 5월 22일 밤부터 경찰에 의해 민청원들의 가택이 수색받는 등 탄압 받다 6월 들어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으로 개편됐다. 1947년 3월 1일, 제28주기 3·1절 기념식을 위해 조천면 관내 사람들은 조천국 민학교로 모여들었다. 조천면의 동쪽 끝 마을 북촌리는 이미 조직동원령이 내려 져 3월 1일 아침, 7시께부터 북촌국민학교 교정에 200여 명이 집결하였다. 2차 집결지인 함덕국민학교에서 함덕리 학생, 청년들과 선흘리 주민 50여명과 합류 6) 『제주신보』, 1947.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