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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창이 추서된 독립유공자였다. 그는 1930년 4월, 제주청년동맹 조천지부원으로 야학활동을 하다 체포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 았었다. 그는 다시 3년 후, 동지의 죽음에 항의해 활동하다 다시 체포돼 징역 10 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 1949년 2월 3일, 조천면사무소 직원 8명이 빨갱이 편을 든다는 명분으로 끌 려가 함덕리 평사동 모래판에서 총살됐다. 당시 희생자는 조천면사무소 직원 강 희순(27, 조천 신흥리), 고세봉(25, 남원 의귀리), 김두현(39), 김문준(21), 김병욱 (23), 김영필(28), 김주용(48), 박순학(42)이다. 또한 이날 한의사 장유보(59), 민 보단장 고화봉(31)도 같이 총살됐다. 조천면사무소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면사무소 건물은 무장대에 의해 호적부와 함께 소실됐고, 직원들은 빨갱이로 몰려 토벌대에 학살되기도 하였다. 1948년 11월 4일 무장대 습격 이후 면사무소의 상황을 한계순(1932년생, 여)은, “여기가 (보건소 부근) 처음엔 면사무소라났주게. 지서 앞이 면사무소고, 중학원이고 허였 지. 경허단 후에 면사무소가 어디로 갔나 허민 저기 절간 있잖아? 이제 거기(고관 조천면사무소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