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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 조천면 역임했다. 1946년 3월 개원한 조천중학원은 면사무소 건물을 임대하여 교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조천면사무소는 1948년 11월 4일 무장대의 습격으로 전소됐 다. 그 후 면사무소는 고관사(조천리 2238)의 대웅전을 40만 원에 매입해 대체 이용했다. 고관사가 면사무소로 이용되자 창건주인 강정완 보살은 조천국민학교 인근 사 가에 아미타불좌상을 모시고 절의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던 1968년 그는 고관사 를 재매입하여 복구했다. 강정완 보살의 외동딸 김영환의 남편도 4·3 시기 폭도 로 몰려 제주시 박성내에서 총살됐다. 5 ○ 김시범 면장(59)은 해방 후 초대 조천면장(1945. 9.~1947. 말)을 지내면서 조천면 인민위원장을 겸임했다. 1947년 7월에는 좌파조직들이 재정비되면서 탄 생한 민주주의민족전선 제주도위원회(의장 박경훈)의 부의장을 맡기도 했다. 그 의 유족들이 신고한 희생자신고서에는 “김시범은 4·3사건 당시 면장이었으며, 1947년 3·1기념투쟁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3·1사건 때 벌어진 경찰의 발포에 항의하기 위해 파업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1947년 4월 18일 제주지방 심리원에서 벌금 3,000원의 약식명령을 받았고, 1948년 11월 초(일자미상) 토벌 대에 연행돼 11월 25일 함덕리 서우봉에서 총살당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김시범은 1919년 제주도 3·1만세 운동의 주도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2018년 정부는 제73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김시범(金時範) 선생(1890. 9. 13.~1948. 11. 25.)에게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 윤창석 면장은 해방 후 조천면 인민위원회 치안부장을 역임했고, 조천면의 3 대 면장으로 근무했다. 4·3희생자 신고서에는 “윤창석(35)은 1948년 7월 조천면 장에 취임하여 재직하던 중 1948년 11월 (일자미상) 이른바 지역유지 사건에 연 루되어 토벌대에 연행된 후 제주농업학교에 감금되었다가 12월 18일 제주읍 이 도리 소재 속칭 고산동산에서 총살당했다”고 되어 있다. 그는 2006년 대통령표 5) 『현대불교신문』(2018. 11. 2.), 한금순 박사가 바라본 제주 4·3 – 고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