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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다. 그래서 그럼 ‘산으로 올라가자!’ 그렇게 된 겁니다. 나중에 학교는 다 폐교되고, 선 생님들은 다 잡혀가서 고문당허고. 그러니 일본으로 도망간 분도 있고, 산에 올라간 분 도 있고, 그랬습니다.” 도쿄에 밀항해 살다 얼마 전 돌아가신 김동일 할머니 3 도 조천중학원생이었다. 그는 중학원에 들어가도 거의 공부를 못했지만 나라가 있어야 공부도 한다는 생 각 때문에 큰 불만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할머니는 당시 많이 불린 노래라며 노래 를 한 곡 불렀다. 해방은 됐지만 야단이 났네 이집 가도 저집 가도 먹을 것 없어 감자는 비싸고 보리쌀은 없어 이래서는 안 되겠다 근로 대중아! 굶어죽는 사람이 천팔백만 큰 코 놈을 믿어서 앉아 있으면 굶어 다 죽겠다 김영규와 현천관도 당시를 기억했다. “조천중학원은 북제주군보건소 조천지소 자리(조천리 2347의 1 번지)에 있었어요. 여기에는 일제 때 경방단 사무실이 있 었고, 바로 옆에 조천면사무소가 있었습니다. 길(일주도로) 건너편에는 조천지서 가 있었고요. 당시 목조기와 경방단 중학원 건물에는 2개 교실이 있었어요. 교무 실은 면사무소 남쪽 창고에 있었고, 면사무소 동쪽 극장터(방치된 창고)가 운동장 이어서, 체육시간에는 일주도로를 통해 운동장으로 이동했어요. 경방단의 2개 교 실은 대략 60평 정도였고, 경방단이 들어선 부지와 운동장도 각각 200평 정도는 되었지요.” 조천중학원 원장이었던 현보규는 1949년 군사재판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정뜨 3)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김창후, 『자유를 찾아서』, 선인, 2008,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