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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5) 역사현장 ① 조천중학원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조천읍 신북로 264 (조천리 2347-1번지) 나. 개요 해방이 되자 제주도에는 자주교육운동이 벌어져 읍·면에는 중학교, 여러 마을에 는 국민학교 설립 붐이 일었다. 조천중학원은 이 시기 다른 지역의 중학원과 마찬 가지로 조천지역 유지와 주민들의 협조로 1946년 3월 설립됐다. 당시 5개 학급에 1, 2학년 2백여 명이 재학했다. 교사로는 현보규(학원장, 국어), 김민학(수학, 과 학), 김동환(영어), 이덕구(사회, 체육), 김석환(역사), 김응환, 한평섭 등이 근무했 다. 이들은 대부분 일본 등지에서 공부한 인재들이었고, 당시 친일파 척결 등을 주 장하는 좌익단체와 알게 모르게 관련돼 있었다. 이들 교사들은 4·3의 와중에 대부 분 희생됐다. 특히 이덕구는 해주대회 참가 차 제주를 떠난 김달삼의 후임으로 인 민유격대 제2대 사령관으로 활동하다 희생됐다. 조천중학원은 1948년 11월 4일 께 무장대가 조천리를 습격할 때 전소되면서 학적부 등이 모두 사라졌다. 조천중학원은 1947년 2월 26일, 김시범을 비롯한 면내 관공서·면민·유지 등이 모여서 3·1기념투쟁준비위원회를 조직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날 회의에서 3·1기 념준비위원회 위원장에는 김시범, 부위원장 김유환, 총무부장 김시택, 조직부장 홍순협, 선전부장 이좌구가 선임됐다. 1947년 3월 1일, 조천중학원생들은 북국민학교에서 열린 제28주기 3·1절 기 념대회에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전날인 2월 28일, 1학년생 20여 명은 학교에 모 여 청년들과 합세한 뒤 2차 합류지인 대흘국민학교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 덕리 청년들과 합세한 뒤 다음날 새벽 와흘과 삼양을 거쳐 오전 10시께 북국민학 교에 도착했다. 학생들은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인파였다. 그러나 이날 행사 후 관덕정에서 발포사건이 벌어지며 제주도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의 터 널로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