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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신촌경찰관출장소가 신설되면서 조천지서는 조천리와 신흥리, 와 흘리, 대흘리만 관할하게 되었다. 조천지서 경찰은 1949년 1월 13일과 2월 1일, 집단수용소에 수 용됐던 각지의 도피자 가족 120 여 명을 지서 앞밭에서 집단총살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총살 은 대부분 서청 출신 경찰이 집행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 현황 현재 조천파출소가 자리하고 있 다. 현대식 건물로 개축되어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으나 파출소 뒤편으로는 당시 지서 외곽 성담과 총구가 그대로 남아 있다. 4·3 발발 직후 다급해진 지서에서 주 민들을 동원해 축성한 것으로, 지금도 지서의 울타리로 이용되고 있다. 성담은 높 이 3m, 너비 2.5m~1.5m, 길이 동남쪽 10m, 북쪽 15m 규모이다. 현재 정문 왼쪽에는 2016년 4·3정립유족회와 4·3경찰유족회에서 세운 표석이 남아 있다. 조천지서 성담 조천지서 추모·표지석 이곳 조천리 2633번지는 4·3 당시 제1구(제주)경찰서 조천지서 옛터이다. 1948년 4월 3일 오전 2시쯤 폭도 40여명이 소총 등으로 무장하고 기습했다. 이때 지서 경비를 하던 김동섭 순경이 접근하는 폭도를 향해 선제 사격하자 폭 도들이 도망 쳤다. 다음날 밤 1시쯤 무장폭도들이 총을 쏘면서 2차 습격했다. 이 에 경찰은 즉각 응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하는 등 교전 끝에 폭도 2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격전 중 경찰 측도 양창국 순경 등 경찰관 2명이 부상을 당했다. 4월 14일 밤 폭도들이 3차 습격하였지만 지서를 적극 방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