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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3) 주둔지 <조천지서> 가. 소재지 제주시 신북로 265 (조천읍 조천리 2633-1번지) 나. 개요 조천경찰관주재소는 1903년 연북정에 처음 설립됐다. 그 후 조천주재소는 1933년에 현 위치로 이전됐고, 해방 후인 1945년 10월 21일 국립경찰이 창립되 면서 제8관구 22구 경찰서 조천지서로 바뀌었다. 조천지서는 4·3 시기 제주읍 동 부지역 경찰 및 응원경찰대의 활동 근거지였다. 이곳에서는 1948년 3월 6일 김용철(조천중학원 2학년, 남) 고문치사 사건이 발 생했다. 이에 대해 당시 제주신보는 1948년 3월 12일자 기사로 다음과 같이 보 도했다. “1구서 조천지서에 작년 3·1사건의 피의자로서 유치중이던 동리 청년이 유치장내에 서 급사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즉 동 사망자는 조천면 조천리 하동에 주소를 둔 김용철 (金用喆, 당년 22세)이란 청년인데 작년 3·1사건의 피의자로서 경찰에서 수배중이었는 데, 지난 3월 4일 미명 동면 대흘리에서 피신 중이던 것이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중이었 던 바, 6일에 이르러 돌연 급사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검찰당국에서는 이 보고에 접하 여 익 7일 채용병 검찰관 지휘 하에 의사 장시영 씨 외 관계관 등이 급거 현지에 출장 하였는데 경찰감찰 부청장 박근용 씨와 CIC 미인도 동행 입회하에 사체를 해부 검시 하는 한편 사인에 대하여 면밀한 현장조사를 마치고 귀읍하였다는 바 앞으로도 의사의 감정서에 의하여 조사를 계속하리라 하며 CIC에서도 경찰당국과 병행조사를 진행하 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그 후 김용철은 조천지서 경찰들에게 고문치사된 것으로 밝혀졌고, 고문에 가 담한 경찰은 구속됐다. 조선일보는 1948년 5월 9일자 기사로 고문 경찰의 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