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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 조천면 에 잃었다. 이곳 희생자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학살됐고, 노약자와 여성, 아이 들이 많았다. 김진주(2002년 80세, 남)는, “조천지서 앞밭 총살 때는 여자 민보단 원을 동원해 죽창으로 찌르라고 명령하기도 했지. 조카가 삼촌을 향해 창을 겨누 는 일도 있었어. 나중에 그 밭에 조천면민관을 신축했어. 그런데 그 건축을 담당 했던 목수가 고사를 제대로 지내지 않고 집을 짓는 바람에 크게 아파서 굿을 하기 도 했어” 하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곳에서는 도피자 가족이 주로 학살됐다. 그중 사건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 과 같다. 1949년 1월 5일: 도피자 가족 20여 명 총살됨 1월 21일: 도피자 가족 60여 명 학살됨 2월 1일: 도피자 가족 50여 명 학살됨 2월 25일: 김원영(41, 여, 이명 김옥희) 2이 학살됨 2) 당시 조천면 여성동맹위원장. 그의 부친 김시범(58)은 항일운동가로 해방 직후에는 건국준비위원 회와 인민위원회의 조천면위원장을 역임했고, 제주도민전 부의장으로도 활동했음. 1947년 말까지 조천면 초대면장도 지냈으나 1948년 11월 25일 함덕 서우봉에서 학살됨 학살터, 조천지서 앞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