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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조천리의 전 주민은 축성에 동원됐다. 매일 반마다 할당된 구역에 나가 성담을 쌓았다. 주민들은 만세동산 쪽에 동문, 일주도로 바로 위 해양아파트 쪽에 남문을 설치하고, 바구머루동산 서쪽으로는 신촌까지 성담을 이어 쌓았다. 성문 남쪽의 중산간 마을들은 모두 초토화됐고, 주민들은 해안마을로 소개했다. 당시 신흥리 는 자신들 마을만 별도로 성을 쌓았다. 정부가 인정한 조천리의 4·3희생자는 262명이다. 남자는 201명, 여자는 61명 이다. 1) 학살터 <조천지서 앞밭> 가. 소재지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나. 개요 조천지서 앞밭은 1949년 1월~2월 시기 도피자 가족으로 몰린 조천면 관내 주 민들이 집단적으로 학살됐던 장소이다. 토벌대는 소개령에 따라 조천에 소개왔던 조천리의 중산간 마을 신안동, 양천동 주민뿐만 아니라 대흘리, 와흘리, 선흘리에 서 온 대부분의 주민을 집단수용소(조천리 2685-1번지)에 수용하고 그중에서 도 피자 가족을 골라내 학살했다. 조천 주민들은 특히 1949년 1월 13일과 2월 1일 총살사건을 잊지 못한다. 이 양일간, 조천지서 경찰은 조천리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집단수 용소에 수용됐던 주민 일부를 공개총살했다. 1월 13일에는 신안동 주민 30여 명 이 그 대상이었고, 2월 1일에는 양천동과 대흘리 주민 60여 명이 학살됐다. 이때 대흘리 부성방(2002년 88세, 남)은 일가족 8명이 소개에 응하지 않았다 는 이유로 총살됐다. 또 양천동 신태호(2003년 74세, 남)도 일가족 4명을 한꺼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