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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상륙작전
1950년 6월 25일 미명을 기하여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아군은 낙동강을 최후 방어선으로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계속 있을 때, UN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총 반격전을 위한 인천상륙을 결심하고, 동해안 장사동 적 후방 작전상륙의 양동작전 명령을 하달함으로써 시작된 전투이다.
육본직할독립 제1유격대대(대대장 이명흠)는 대원 772명, 지원요원 56명과 함께 L.S.T 문산호(2,700톤급)로 부산항을 9월 13일 15시경 출항, 다음날 새벽 5시경 장사동 해안 상륙지점에 도달하였으나, 케지아오 태풍으로(파고 3~4m) 배는 좌초되고, 적의 포하속에 대원들은 구국일념으로 투혼, 악전고투 끝에 상륙에 성고, 적후방 교란, 보급로 차단, 퇴각로 봉쇄하고, 적의 전의를 상실케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 상륙전에서 아군은 학도대원등 전사 139명, 부상 92명을 포함하여 수십 명의 행볼자를 발생시켰다. 그 후 육군본부에서는 이 전투에 참전한 유격대원에게 우국청년(의사)이라 호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