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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 조천면 대에 학살됨 (함덕리-학살터-진동산, 참조) 12월 18일: 윤창석(35, 남, 해방 직후 조천면 인민위원회 치안부장 역임) 조천면장이 11월 제주농업학교로 연행된 뒤, 이날 이도리 고산 동산에서 총살됨 12월 21일: 자수사건 발생. 강태봉(19, 남) 등 18명이 아라리 박성내로 끌 려가 총살됨 (아라리-학살터–박성내, 참조) 1949년 1~2월 시기, 조천리 정미소 창고에는 도피자 가족으로 잡혀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들은 수시로 불려나가 총살됐다. 어떤 날은 수십 명씩 불려나가기도 했다. 조천지서 앞밭이 이들 처형장이었다. (조천리–학살터-조천지서 앞밭, 참조) 1949년 3월 2일: 박종효(42, 남)는 함덕리 평사동 모래밭에서 토벌대에 학살됨. 이날 궤뜨르 사람들이 함께 살해됨 (함덕리-학살터-관뒛모살, 참조) 1953년 4월 27일: 김호현(18, 남)은 무장대 활동을 하다가 토벌대와 교전 중 사망 함1 조천리에서는 무장대에 의한 주민 학살도 가끔 일어났다. 1948년 5월 12일: 김순양(여, 73) 일가족 7명이 양천동 서쪽 소나무밭에서 무장 대에 학살됨 11월 11일: 조천지서를 습격한 무장대가 이장원(35, 남) 일가족 7명을 식 량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학살함 12월 20일: 무장대가 한명숙(39, 남, 공무원)과 그 부모를 자택을 습격하여 살해함 1) 『제주신보』, 1953. 4. 28. 해당 기사에서 김호현을 비롯해 김형봉(22, 남, 조천리), 강석종(21, 남, 봉 개리), 최봉근(29, 남, 귀덕리)이 사살되고,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여성 한 명이 생포됐다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