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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조천지서와 큰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그러던 1948년 3월 6일, 4·3의 도화선이 된 조천중학원생 김용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천지서에서 벌 어졌다. 이 사건은 3월 14일 모슬포지서에서 터진 영락리 청년 양은하 고문치사 사건과 함께 제주사회를 뒤흔들며 4·3무장봉기로 이어졌다. 조천리에서는 경찰과 우익단체원들의 주민 탄압 못지않게 조천지서와 면사무 소가 위치해 있어 무장대의 기습도 잦았다. 무장대는 1948년 11월 4일과 11일, 12월 21일에 마을을 기습했다. 이 과정에서 우익인사와 그의 가족들이 일부 희 생됐다. 토벌대는 무장대의 습격이 있고난 다음에는 어김없이 보복학살을 자행했 다. 그 대상은 중산간 지역에서 피난 온 소개민들과 조천지역 주민 중 가족이 사 라진 도피자 가족이었다. 조천지서 앞밭은 도피자 가족 집단학살의 일상적인 장 소였다. 당시 이러한 악순환 때문에 자진해서 산간으로 피난하는 주민들이 속출 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산중에서 토벌대에 쫓기다 학살되기도 했다. 조천리는 4·3 초기부터 경찰과 치열하게 대립했다. 토벌대는 그런 조천리를 주 목했다. 1948년 3월 6일: 김용철(21, 남, 조천중학원 2학년, 학생위원장)이 조천지서로 연행된 뒤 고문치사함 (와흘리–기타-김용철 묘, 참조) 4월 24일: 문홍목(20, 남)이 도로변 참낭거리에서 총살됨 5월 10일: 이임생(58, 여)은 양천동 보리밭에서 총살됨 6월 1일: 김모원(44, 남)은 조천지서 경찰에 항의하다 총살됨 6월 16일: 부우수(41, 남)는 경찰의 구타 후유증으로 사망함 1948년 11월, 토벌대가 중산간 마을에서 초토화작전을 벌이기 시작하자 무장 대도 조천면사무소와 지서를 습격하고 함덕, 신흥 등 주변 마을도 공격했다. 이들 의 공격 후에는 함덕 주둔 9연대나 경찰이 무장대를 추격한다는 명목으로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총살했다. 1948년 11월 6일: 장일환(23, 남) 형제를 비롯한 청년 8~9명이 이틀 전 무장대의 조천면사무소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평사동 모래밭에서 토벌